제가 글을 쓰고 있는 한 커뮤니티에 얼마전 제가 올린 글에, 이웃 한 분이 아래와 같은 댓글을 남겼습니다.
“저는 상대를 대할때 기준을 무례한가로 둡니다. 어쩌면 그것이 상대에게 더이상 다가갈수도 상대가 다가올수도 없는 기준이라 할지라도 저는 이세상을 잘 살아갈수 있는 나만의 방식으로 생각합니다. 무례하지 않은 관계가 10년 20년 지켜져 오고 있는게 그 증거일테니까요.
모든 사람과의 관계가 그렇지 않을까요.
친함의 표현을 무례함으로 포장되야 한다면 저는 과감히 한발자국 뒤로 물러서겠습니다”
인간관계의 기준을 무엇에 두느냐는 개인적인 주관에 의한 것이겠지만, 그 기준이라는 것을, 우리가 관계하는 다섯 명, 두명, 아니 단지 한 명만 한정한다고 가정할 때, 싱글이라면 그 가족 중 누군가, 아니면 연인이거나, 혹은 아주 친한 단짝일 테지요. 기혼이라면, 단연 그 관계의 기본은 부부관계 일테구요.
저는 기혼자이니, 남편과의 관계를 예를 들어 이야기를 해 보자면, 이제 갓 결혼한 신혼이라도, 이미 십 년을 산, 아니 이십 년을 산 부부라 할지라도 서로간에 지켜야할 예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상적인 생활에서, 아이를 양육하는 관점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겪는 딜레마를 헤쳐나가는 방식을 논의함에 있어서도, 서로를 바라보는 눈을 먼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아껴서 내가 그를 위해 무언가를 하겠다고 하더라도, 그 방식이나 과정이, 상대방을 불편하게 한다면, 그것은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내 스스로의 친절을 내 만족에 따라 베푸는 관용은 될지라도, 상대를 절대적으로 위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기저에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깊은 연민과 신뢰, 나아가서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의리라는 감정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가 주관적으로 베푸는 불편한 방식의 사랑을 무례하다고 하진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행위가 계속될수록, 오직 두사람의 문제에 머물기 보다는, 부부관계를 중심으로 한 자녀와의 관계, 부모님들 과의 관계, 나아가서는 부부가 각자 발 담그고 있는 사회 생활 속에서, 그 상대방이 가지게 되는 수많은 감정과 입장의 그늘 속에서, 결국에는 그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대화가 필요하고, 그 작은 관계 속에서도 상호작용하는 사회생활의 지혜가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행복한 부부는,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의 거리와 형태에서 다른 사람들과는 차이를 보입니다. 그 시선이 오직 그 사람에만 국한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관계한 모든 관계를 거치고 거쳐, 궁극적으로는 다시 그 상대에게 와 닿는 완만한 곡선의 형태일 것입니다. 사랑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도, 사랑이라는 그 고귀한 이름을 덧입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상대에게 와 닿았을 때의 온도와 색깔을 생각해야 함은 당연지사입니다.
그렇다면, 가족도 아니고, 결혼이라는 제도권에 속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유기적으로 물리적으로 오랜시간 이어져와 너무도 익숙해진 그러한 사이에서의 무례함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바로 오래되어 이제는 그 색깔이 원래 색깔이라 인식되어지는 그 원래 색깔을 기억해 내는 것이, 무례하지 않은 사람들의 오랜 태도일 것입니다.
아무리 나와 오랜 베스트 프렌드라 할지라도, 내가 오래 보아서, 그사람의 인내와 관용으로, 내가 그러했을지도 모르나, 이미 퇴색되고 변색되어진, 고착된 이미지와 빛깔을 떠올려야 합니다. 그 빛깔을 떠올려서 그와 같은 예전에도 같은 색감으로 영롱하게 빛났던 것이라면, 그 우정은 진짜이며, 서로에게 무례하지 않았다는 증거일 것이고, 그 빛깔이, 예전을 떠올렸을 때에, 우리 모두 깜짝 놀랄만큼 다른 것이라면, 이미 나는 그 사람에게 무례하여서, 이미 그 관계는 가식적인 것이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에게 너무나도 훌륭한 인내자이고 동반자여서, 지금이라도 그 때의 그 빛깔로 되돌려 놓지 않으면, 불안할지도 모르는 관계의 장을 지나고 있는 중일 것입니다.
나이가 들고, 그 세월의 흔적을 제각각 끌어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가족의 범주를 한참 뛰어넘고, 철없던 시절을 허물없이 지내온 사람들과는 또다른 세상에서, 서로의 이해관계를 통해 새로운 인간관계를 끊임없이 맺으며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얼마나 서로에게 무례하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친하다는 것은, 어쩌면 개인적인 주관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모두 한 사람의 아내이고 남편이며, 아이들의 엄마이며 내 나이 드신 부모님들의, 여전히 물가에 내놓으면 불안한 자녀들입니다. 그들보다도 더 친한 관계를 우리가 지금 만들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어른입니다. 티격태격하며 친해지는 시기는 이미 지났습니다. 아니, 티격태격 할 새도 없이, 단 한 번의 문제로도 금이가고, 관계를 청산해야 할지도 모르는, 너무나도 개인적이고 현실적인 삶을 살며, 모두가 치열하게 살아갑니다. 어른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아이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고, 아이같이 행동해서는 사회생활에서 열외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 바운더리에서 내 생각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내 사고방식에 그들을 끌어들여 생각해서도 행동해서도 안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참 어렵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인간관계를 어렵게 여기고 살아야 하는 어른입니다.
어른이 된 우리가 생각하는 그, 친하다는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연민이 이미 마련된 관계가 아니라, 그러한 것들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과정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린 시절 친한 친구 대하듯이, 맹목적으로 나를 사랑해 주시는 부모님이 그러할 것이라는 근거없는 믿음을 가지고 친한 사람들을 대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이러하니 저들도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무례한 것입니다. 호칭의 문제부터 말투, 태도의 문제까지, 어려워해야 합니다. 어렵지 않은 관계는 어렵지 않게 끝나버립니다.
여기까지가 그곳에 쓴 정중한 글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인간이, 가볍고 무례하고 무식한 인간입니다. 무식하다는 의미가 단순히 학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애 말고는 없는, 타인에 대해 알고자 하는 의식 자체가 그 뇌에 존재하지 않아서, 그러한 성향이 그대로 그 모습에서 드러나 어떠한 사회적 현상에도 자기위주로 생각하다 보니 자기 안에 갇혀 도무지 외부로부터의 어떤 지식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런 무식함을 이야기 합니다.
그 세가지가 똘똘 뭉친 인간을 최근에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가족과 이해관계가 엮인 아주 애매한 관계라, 의식적으로 조심하고, 마음에도 없는 친절을 베풀며 갖은 노력을 하며 관계를 지속하려고 노력해 보았는데 쉽지가 않더라구요.
저는 예의가 바른 인간이라, 사실입니다 ㅎㅎ, 그 이해관계가 끊기자 마자 바로 관계를 끊어 버렸습니다. 제 정신건강에 해롭기도 하거니와 내가 더이상 친절을 베풀어봤자, 이제는 내 안에 남아있는 그런 감정이 무한이 아니라 유한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낭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때마다, 새로운 인간관계 맺기가 겁이 납니다. 원래가 소심한 인간이라 낯을 가리는데, 그것이... 잃을 게 많은’ 사람이 되자 더 견고해지고 단단해져서, 여간해서는 나를 뚫고 나가서 다시 어딘가을 향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래도 아직 살아야 하니 내가 싫든 좋든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니 내 스스로 껍질을 단단하게 하는거 말고는 수가 없겠지요...
그분의 댓글을 통해 나 역시 누군가에게 무례하지는 않았는지, 나는 무례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할 수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스팀잇에서도 무례한 글을 달진 않는지ㅜ 반성하는 기회를 갖습니다.
옴~~~~~~~~~~~~~~~~~
무례함은 약자가 강한 척 하는 것이다
- 에릭 호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