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나서면 목적지를 정하지 않아도 항상 지나치게 되는 길이 있다. 그리고 그 길에는 잘 묶여있고, 짖지 않고, 보통은 개집 안에 들어가 있는 하얀색 순한 개가 한마리 산다. 어제도 평소와 같이 산책을 하며 그 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한 사람이 그 개에게 가까이 갔다. 그리고는 팔을 넓게 펼치고 소리를 지르면서 발을 굴렀다. 개는 특별한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고 특별한 몸짓도 없었다. 하지만 반응이 없다고 남자의 위협이 멈추진 않았다. 개와의 거리를 점점 거리를 좁혀가며 한구석으로 몰아갔다. 개는 그렇게 구석에 몰리다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개의 반응을 더 이상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짖지도 않았고, 그 사람의 태도로 보아 개는 별 다른 반응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 사람은 정당성을 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구석에 몰리고 위협 받는 개가 결국은 자신을 공격하길 원했던게 아닐까? 개에게 공격 받은 순간 그 사람에게도 개를 공격할 정당성이 생긴다. 개가 자신을 먼저 공격했다는 사실은,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유효하다. 타인에게는 효과적인 변명이며, 자신에게는 반항하지 않는 상대를 공격했다는 불편함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반응 없는 개를 위협하는 것도 지쳤는지 그 사람은 개집을 손으로 짚고 발을 개집에 쑤셔 박기 시작했다. 그래도 개는 반항하지 않았다. 한번, 두번, 세번, 네번. 정확한 박자로, 같은 동작으로 개를 차는 모습에서 좀비를 떠올렸다. 꼭 좀비가 아니더라도 이성을 상실한 존재를 이처럼 묘사하곤 한다. 강박적으로 이미 숨이 끊어진 사람의 복부를 수십번 찌르는 장면이 떠오른다. 아주 흔한 장면이고 당장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에서도 보았던 장면이다.
말리거나 주인을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주인이 집에서 나왔다. 개를 차던 사람은 말을 제대로 못 하는걸 봐서 취한게 분명했다. 여기까지 지켜보고 자리를 떠나서 두 사람의 대화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는 모르겠다. 오늘 지나가며 그 개를 다시 보았는데,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없고 걸음걸이에 이상이 있지도 않았다. 다행이도 크게 다치진 않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