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아빠가 술에 취해 주정을 시작하면 엄마는 조용히 떠날 준비를 했다. 조그마한 돗자리와 모기향 하나. 그리고 어린 날 데리고 집을 나섰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욕하는 아빠를 뒤로하고 엄마와 나는 건너편 주인집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 한 켠에 돗자리를 깔고 모기향에 불을 붙여 놓고는 짙은 밤하늘을 이불 삼아 눕고는 했다. 엄마와 함께 바라본 밤하늘엔 모래알처럼 뿌려진 별들이 아무것도 모른 체 빛났다. 선선히 부는 바람과 시끄럽게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 그 틈바구니 속에서 엄마와 나는 사소한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엄마와 난 아빠를 피해 하늘 아래 숨었다 더 이상 아빠의 고함이 들리지 않으면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다.
아빠는 주로 밤에 술을 마셨지만 일 년에 한두 번쯤은 낮에 마실 때도 있었다. 그날도 아마 그랬던 것 같다. 밖에서 막 돌아온 내게 엄마는 말했다.
“동물원에 갈까?”
난 좋다며 펄쩍 뛰었다. 처음이었다. 엄마는 오래전부터 부족한 살림을 챙기기 위해 공장에 나가셨다. 그래서 나는 엄마와 단둘이 가까운 곳 어디에도 놀러 가본 적 없었다. 물론 엄마가 왜 동물원에 가자고 하는지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어린 마음에 동물원에 간다는 사실이 마냥 기뻤다.
엄마와 처음 함께 온 동물원은 무척이나 넓었다.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 속에서 엄마와 나는 한적한 동물원을 천천히 걸었다.
“갑자기 동물원에는 왜 오자고 했어?”
엄마는 “그냥”이라며 얼버무렸다. 몰랐던 건 아니다. 아빠를 피해 이곳에 왔다는 걸. 그럼에도 엄마에게 물은 건 불안감 때문이었다. 엄마에게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 난 그 감정이 무서웠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서늘함. 엄마는 내게 보이지 않게 울고 계셨다. 우릴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소리 없이 우셨다.
날이 저물고 엄마와 난 아무 일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에도 엄마와 나는 아빠를 피해 종종 집을 나섰지만 다시 동물원에 가는 일은 없었다.
그날을 되짚어보면 날이 흐렸는지 화창했는지, 뭘 봤고 무얼 먹었는지, 안개가 낀 것처럼 희미하다. 그저 기댈 곳 없어 헤매는 엄마의 쓸쓸함과 놓아 버릴 수 없는 어린 자식을 향한 애달픔만이 남아 있을 뿐.
지금도 작은 내 손을 꼭 잡은 엄마가 동물원 그 어딘가를 걷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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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걱정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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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힘내라 서툰 내 인생
#24 잘 알지도 못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