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란의 주말을 보냈습니다. 제 친구 그룹은 오래토록 멀리서 왕래하며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10대때 이미 서로 사는 곳이 달랐고 만남은 수개월에 한번 있는 이벤트였지요. 자주 만나지 못 하는만큼 만날 때마다 한집에 모여서 주말을 같이 보내곤 했습니다. 유유상종이라고, 모이고 보니 경제관념이 비슷하더군요. 아니면 지내며 서로 닮아간 것일까요? 친구들이 같이 노는 것에 아주 높은 가치를 두고 있어 딱히 네 것, 내 것 따지지 않고 공동소유하는 물건들이 많습니다. 지불하는 돈도 제각각이지요.
다양한 취미를 가지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집에 모여서 게임이나 하는게 가장 경제적이더군요. 친구들끼리 경제적 격차도 심해서 아무리 여유 있는 친구가 돕는다해도 외부 활동은 부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굴러다니는걸 좋아하는 저희는 게임만 해도 행복합니다.
그래서 공동소유하는 물건들에는 게임과 관련된 물품이 많습니다. XBOX, PS4부터 PC, TV까지 구비해두고 같이 즐기고 있습니다. 보드게임도 좋아하며 보드게임방에 가서 즐겼지만 사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보드게임방 비용이면 어느덧 보드게임을 여럿 구비할 돈이 되어 지난 주에는 꼭 사서 하자는 다짐을 하고 주문을 했는데 오배송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새로 주문해놓고 기다리는 동안은 그대로 디지털에 남아야겠지요. 핫한 게임인 배틀그라운드를 즐기기로 했는데, 제 랩탑은 작업용이라 게임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최근에 250만원짜리 랩탑을 사서 안 쓰는 데스크탑이 생긴 친구가 이를 기증하기로 하며 차에 실어오는 투혼까지 보여주어 다 같이 즐길 수 있게 되었지요. 컴퓨터 5대, TV 2대씩 켜져있기도 한 진성 폐인들의 소굴...
사실은 이미지를 탈피하겠다는 생각에 사진을 찍었으나 이미지를 탈피하려다가 망쳐버리겠다는 생각에 차마 이는 올리지 못 하겠습니다. 아, 글로 너무 많이 공개했나요?
먹기도 더럽게 많이 먹었습니다. 생각나는 메뉴만 해도 보쌈, 닭갈비, 삼겹살, 피자, 치킨... 이렇게 먹고 놀다보니 드디어 기다리던 보드게임이 도착했습니다.
기다리던 게임은 바로 아그리콜라(Agricola)입니다. 상자의 묵직함이 좋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게임은 농부들이 집을 확장, 개조하고 울타리, 외양간을 지어 가축을 사육하고 밭을 경작하는 게임입니다. 말 그대로 종합 농장 게임이지요. 큰 틀은 유로 스타일 게임(Euro-style game), 일꾼배치(Worker Placement)에 속한다는군요.
유로 스타일 게임이란 운보다는 전략을 중시하며 직접적인 공격을 통한 경쟁보다는 간접적인 견제를 통한 경쟁을 추구하는 전략게임을 지칭한다고 합니다. 유로게임(Eurogame)이라 부르기도 하고 보드게임은 독일에서 강세라 German-style board game, German game이라 부르기도 한다네요. 일꾼배치는 말 그대로 한정적인 일꾼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것에 중점을 둔 게임을 말합니다.
상세한 규칙을 설명해봐야 재미도 없을 것이며 검색만 해도 쉽게 알 수 있어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마무리 단계의 사진을 올립니다. 이건 2명이서 진행했던 사진인데 중간에 큰 판이 게임진행판, 가장 자리에 울타리, 집, 밭이 놓여있는 판이 개인농장입니다. 게임진행판을 보시면 사람 모양 형상이 올려져 있는게 보일텐데, 이 판을 통해 자원을 획득하고 행동을 합니다. 잠시 용어설명을 하자면 이러한 추상화된 사람 형상을 My와 People의 합성어인 Meeple이라 부릅니다. 상대가 이미 점유한 칸에는 자신의 일꾼을 배치할 수 없기에 상대의 전략을 견제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의 전략을 구성해서 하는게 아니라 플레이어가 늘어남에 따라 차선책, 차차선책을 계속 생각해 두어야 상대의 견제에도 효과적으로 농장을 꾸려나갈 수 있습니다.
개인 농장판 옆에 노랑, 빨강, 주황 카드가 놓여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각각 직업, 주요설비, 보조설비를 나타냅니다. 직업카드, 보조설비 카드는 각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며 행동칸에 일꾼을 배치하고 비용을 지불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주요설비는 게임진행판 위에 놓여진게 보일텐데 이 또한 행동칸에 일꾼을 배치하고 비용을 지불해서 획득합니다. 단 이는 한정된 수량이 있어 자신의 전략에 중요한 설비라면 뺏기지 않기 위해 선점하는게 유리합니다.
그리고 몇번 해보니 이 게임은 3~4인이 재밌는 것 같습니다. 2인으로 하면 자원도 많고 견제도 약한만큼 서로 차선책을 두기보다 처음 그려놓은 큰 그림 그대로 게임을 이어가기 쉽고 5인으로 진행하면 너무 압박이 심한 구조입니다. 굳이 견제할 생각이 없더라도 다른 일꾼이 점유한 공간은 사용할 수 없기에 행동에 제약이 굉장히 크거든요. 특이하게도 1인 플레이를 위한 규칙도 있으며 꽤 재밌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플레이하면서도 혼자 해도 재밌겠다 싶더라구요.
대략적인 설명은 끝이 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종합적인 평점을 제시하면 독자분들에게 고정관념을 심을까 두려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소들을 나열하고 분석해볼까 합니다.
반복성
직업카드와 보조설비 카드가 매판 다르기에 매판마다 새로운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전략에 따라 농장의 형태를 다르게 키워나가는 것도 하나의 재미입니다. 직업카드와 보조설비를 나누는 방식도 몇가지 제시하고 있으며 룰을 자율적으로 수정하여 즐기는게 보드게임의 재미 중 하나인만큼 다양한 방법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전략성
반복성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매번 새로운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그리고 의도하지 않아도 서로의 플레이를 견제하게 되는만큼 자연스레 차선책, 차차선책도 생각해 놓아야하고 상황에 따라 전략을 통체로 수정해야 하기도 합니다.
경쟁성
직접적인 공격은 불가능하지만 상대의 일꾼배치, 직업, 보조설비를 보면 어떤 행동을 하고 싶을지 눈에 확 들어옵니다. 가령 울타리와 외양간을 건설하는걸 보면 상대가 가축을 사육할 준비를 한다는걸 알 수 있는데, 가축시장을 선점하여 번식기(이에 해당하는 턴이 있음)에 충분한 수의 가축을 획득하는걸 견제할 수 있습니다.
승부는 점수표에 해당하는 감/가산 요인을 따져 종합적으로 성공적으로 농장을 꾸려낸 플레이어가 승리하는데, 각 요소의 가산점에는 한계가 있어 가축 사육, 농사, 집 확장, 개조 등을 모두 신경 쓰며 해야합니다. 없는 가축(양, 소, 돼지), 농산물(곡물, 야채), 말판에 빈자리 등이 감점 요인이라서 게임이 후반부에 다다르면 상대가 어떤 행동을 하고 싶을지 쉽게 예측할 수 있어 게임은 더욱 치열해집니다.
하지만 직접적인 공격이 가능한 게임보다는 확실히 압박감이 약합니다. 기본적으로는 게임 초반부에 그린 큰 그림이 얼마나 유효한가에 따라 승부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지요.
승부욕은 게임에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만큼 어느정도의 경쟁성은 있어야 게임이 더욱 흥미롭습니다.
난이도
디지털 게임도 난이도 차이가 크지만 연산을 컴퓨터가 대신 해주고 실시간으로 필요할 때마다 UX/UI를 통해 지향점을 제시하거나, 규칙을 상기시켜주는 디지털 게임과 다르게 플레이어 각각이 상세한 규칙을 모두 숙지해야 하는 아날로그 보드 게임은 난이도의 편차가 더욱 큽니다. 아그리콜라는 전략 게임 중에는 간단하고 직관적인 규칙을 가진 편이지만, 전략 게임에 속하는만큼 아날로그 보드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략적인 배치, 일꾼 활용, 카드에 해당하는 직업과 보조설비, 한정된 주요설비 등 보드게임의 다양한 요소들을 한번에 접할 수 있는 게임인만큼 비교적 무거운 보드게임에도 입문하실 분들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게임입니다.
디지털 게임이 편하고, 보드게임도 디지털에 이식된 것이 많아 디지털로는 더욱 쉽게 플레이할 수 있지만 확실히 아날로그에는 아날로그만의 여유와 감성이 있으니 게임을 좋아하는 분들은 기회가 되면 요즘 보드게임방도 많으니 한번쯤 즐겨보시면 재밌을겁니다.
역시 노는 것도 재밌지만 글쓰기도 너무 재밌습니다. 앞으로 디지털/아날로그 구분하지 않고 게임에 대해서도 다양하게 이야기 할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