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1 집에 도착하면 활기가 넘치는 사람
2 집에 도착해서 뻗는 사람
#1
오늘은 유난히 힘든 하루였다.
아침 10시부터 회의가 연달아 잡혀서 계속 회의하다 정신차려보니 3시였고, 부행장님께 발표할 보고서를 만들던 팀장님은 보고 기한이 다가오자 초조해지셨는지 회의가 끝나자마자 내가 작성한 보고서 초안을 두고 이것저것 물어보신다. 어떡하지.. 지금은 아무 생각도 안드는데.
"좀 더 생각해보고 내용 추가해서 드리겠습니다."
그제서야 자리로 돌아가시는 팀장님. 이제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걸려오는 부장님 전화.
"예. 부장님. 해달입니다."
"어~ 해달씨 요즘 바쁘나?"
"예 조금. 하하하. 요즘 CRM이 난리지 않습니까."
"그래? 음.. 그럼 저번에 말했던 거 있잖아.."
"아~ 행장님께 드릴 보고서요?"
"그래 그거. 해달씨 바쁘다니까 그냥 내가 해야겠네."
아뿔싸..!!
"아닙니다;; 제가 작성하겠습니다."
"그럴래? 그럼 해달씨가 이거 한번 해봐. 지금 내 자리로 올 수 있나?"
올해 들어서 계속 바쁘긴 했지만, 퇴사를 앞두니 하루하루가 정말 다이나믹하다. 어쩐지 팀에서 내 퇴사 의지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인 차장님도 나한테 일을 몰아주는 눈치고..
물기 하나 없이 마른 눈이 유달리 뻑뻑하다.
#2
..깜빡 잠들었나?
턱 근처에 뭔가 끈적한 게 흐르다 마른 느낌이 나는 걸 보니 침 질질 흘리며 신나게 잤나보다.
시계를 보니 벌써 9시다. 8시반쯤 들어왔으니, 대강 30분 잤나. 그거 조금 잤다고 몸에 활기가 도는게, 잠이 보약이긴 한 것 같다.
정신 차릴겸 그동안 쌓인 톡을 신문기사 읽듯 하나씩 넘긴다. 많이 바쁘냐는 여자친구, 근황을 전하는 엄마, 내일 엄마 환갑 생일파티를 위한 작전 수행에 차질이 없는지 묻는 누나, 선물만기로 인한 비트 향방을 예측하고 있는 코인방, 그리고 배그 얘기로 떠들썩한 고향 친구들 단톡방. 어쩜 이렇게 각자 다른 주제로 재밌게 얘기하고 있는지, 피식 웃음이 난다. 천천히 하나씩 답을 하고 있는데, 어라? 고향 친구들 단톡방에 눈에 확 들어오는 인사가 있다.
안녕? 다들 하루 잘 마무리했니?
#3
가끔 별 것 아닌 인사나 사소한 배려가 큰 감동으로 다가올때가 있다. 특히 몸이나 마음이 평소보다 조금 약할 때 그런 경향이 있는데, 오늘은 좀 약한 날이었나보다.
이 담백한 인사에 뭉클해지는 걸 보면.
이 별 것 아닌 인사에 위로받는 걸 보면.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몸이나 마음이 힘들고 지쳐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이 담백한 인사가 위로가 될 지 모르겠지만, 혹시 모르는거니까.
인사를 건네본다.
안녕? 다들 하루 잘 마무리했니?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