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前人種樹, 後人乘涼(앞에 오는 사람이 나무를 심으면 뒤에 오는 사람이 그 나무 그늘에서 쉴 수 있다.)'를 생각하는 입니다.
여러분은 ‘학문(學問)’을 생각하시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학문이란
“어떤 분야를 체계적으로 배워서 익힘. 또는 그런 지식.”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네이버 사전 참고)
일반적으로 ‘학문’을 답답하게 생각하실 수 있을 것도 같은데요...
그러나 ‘학문(學問)’을 ‘학(學)’과 ‘문(問)’으로 나누어 생각해보시면 다소 신선하게 다가오실 것 같아 스티미언 여러분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아시다시피
‘學’은 ‘배우다’, ‘問’은 ‘묻다’
--
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교육체계에서 가장 이상적일 수 있는 단계는 초중등교육에서 ‘學’을 하고, 고등교육에서 ‘問’을 하는 것이죠.
다시 말해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지식을 배워나가다가 고등학교, 대학교에 들어가서 그동안 배운 지식에 대해, 내 관심분야에 대해,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것입니다. (정말 이상적이지요...^^;)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체계에서, 그리고 사회생활에서는 ‘질문’하면 큰 일 납니다.
여러분 혹시 EBS 다큐프라임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5부 말문을 터라)>(2014.1.20.)라는 프로그램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혹시 못 보신 분들은 꼭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총 6부작입니다.) 1분 46초 영상이니 함께 보시죠.
프로그램 초반에 2010년 서울 G20 폐막 기자회견장에서 오바마 미국대통령이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할 기회를 줍니다. 그러나 누구도 질문하지 않지요. 결국 중국 CCTV 간판 아나운서였던 루이청강(芮成鋼)에게 그 기회를 내어주고 맙니다. (번외 이야기입니다만.. 루이청강은 후일 중국 고위 간부 부인들의 정부(情夫)이었던 사실이 발각되어 한 순간에 몰락합니다.)
영상을 보시고 무엇을 느끼셨나요?
우리나라에서는 대중 앞에서 발언하고 질문한다는 것은 실수를 하지 않고 완벽해야만 합니다. 그런 고정관념이 있나봅니다.
가끔 자녀들(초등4학년, 1학년)과 학교에 대해 이야기 나눌 때 ‘질문 여부’에 대해 자주 물어보곤하는데요, 초등 4학년인 첫째녀석은 벌써부터 “질문 하면 애들이 싫어해요.”라고 합니다.
아마 외국에 유학하시거나(했던), 거주하시는(했던) 분들은 한국과 외국의 교육 차이를 몸소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제 유학생활 초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기도 하구요.
교육에는 분명 정답이 없다고는 하지만 변화무쌍한 현 시점과 미래에는 ‘질문’의 중요성을 우리 자녀들에게 전달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라는 질문을 좋아해주세요.
--
맹목적인 배움은 배움의 방향과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배우다가 자신의 길을 잃지만,
--
이유있는 질문은 배움의 방향과 이유를 알고 가기 때문에 자신의 길을 찾아나갈 수 있습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