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용서해, 고마워, 사랑해)
따사로운 아침 햇살이 가득히 내 눈으로 들어와 눈을 감으면 난 마치 해 중앙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을 했다.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는 아주 따뜻한 볕이 사르르 내 눈을 통과해 나에게 하루를 버틸 수 있는 에너지를 넣어주는 것 같았다. 꼭 그 시간이어야만 하는 그런 온도의 햇볕. 그 시간의 그 볕을 나는 절대 잊지 못할 거다. 그 볕을 받으며 창문을 열고 시작하는 식물들과의 눈 맞춤. 그리고 속삭이던 말 사랑해. 고마워
망고, 감, 금귤, 레몬, 오렌지...많은 식물이 씨앗에서부터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것을 보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그렇게 식물들과 함께 있으면서 서서히 정신이 들었을 때 나를 찾아오는 건 칼날 같은 기억이라는 고통이었다. '차라리 미치기라도 하지.' 미치지도 않고 나에게 찾아오는 수류탄 파편들. 피하고 싶어도 피해지지 않는 살아 숨 쉬어 나오는 기억들...
나의 정성에도 죽어가는 식물들이 나왔다. 그 식물들을 보며 '제발 살아다오' 라는 간절함에 나도 모르게 '미안해' '용서해' 라는 말이 처음 나왔을 때 나는 멍하니 넋이 나갔다.
나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어디에서부터 나를 용서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아빠는 왜 그렇게 가셔야 했는지...
왜 나는 여기에 있어야 했는지... 나는 왜 아빠에게 사랑한다는 그 말 한마디를 못 했는지... 나를 어디에 놓고 용서를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그저 내가 미웠다. 전부다.
식물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나왔던 그 한마디를 왜 나에게는 못하는 걸까? 나도 죽어가고 있는 거 같은데...
바뀔 수 없는 사실들... 왜 아픈지, 어떤 상황에서 왜 내가 힘들었는지 그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바뀔 가능성 비록 지금은 아프지만, 내일은 아파지고 싶지 않다는 거.
살아 숨 쉬며 날까로운 칼날로 나를 찌르며 난도질을 하는 기억들이 살아 나올 때마다 나는 식물에 했던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미안해' '용서해'.
기억에 대한 용서. 그리고 나를 그 아픈 상황에 두어야만 했던 나에 대한 용서. 나를 먼저 용서해야 너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를 먼저 용서해야 아빠를 그리워하기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아픈 기억이 떠올려질 때 마다 반복했다. 아픔이 사라지지는 않아도 흐려질 수 있을 때까지...
미안하다고. 용서하라고.
안 괜찮은 것이 당연하니까 아주 아프고 일어나자고... 그리고 내가 다시 일어났을 때는 절대 더는 지금 아픈 일들로 나를 괴롭히며 아파하지는 않을 거라고...
얼마큼의 시간이 필요했을까... 과연 나는 아픔의 시간을 얼마를 줘야 하는 걸까? 내가 주려고 하지 않아도 어차피 내 시간을 가져가는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 이번에는 나의 이름까지 넣어 말하기 시작했다.
'나의 행복한 동그라미' 미안해. 그동안 너무 아프게 해서 미안해. 인제 그만 용서해. 고마워. 아주 많이 사랑해' 라고...
그리고 아빠에게... 아빠 죄송해요. 용서해요. 사랑해요. 많이 감사해요.
그러다가 이제는 두 팔로 나 자신을 안으며 말하기도 했다. 미안해. 용서해. 그리고 고마워. 사랑해
나는 지독한 이기주의자다. 아니 어쩌면 지독히 자기애가 강한지도 모르겠다. 내가 살기 위해 끝없이 미워한 나를 용서해야 했고, 내가 살기 위해 너를 용서했고, 내가 살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마음을 닫아야 했다. 그것은 아마도 그 시간 속에서 무너져 버린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과정이었을 거다.
내가 숨을 쉬게 되었다 생각했을 때... 나는 다시 건강을 잃었고, 그 상실감은 나를 다시 서서히 미치게 했었다. 그리고 건강을 비롯해 소중한 사람들을 함께 잃었다.
행복하기에도 인생이 너무 짧다고 느낀 것은 내가 지독하게 아프고 소중했던 많은 보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잃고 나서였던 거 같다. 보이고,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 그것들이 없을 때 내 삶이 얼마나 황폐해지는지 내 삶이 얼마나 슬퍼지는지 알게 되는 길고 긴 시간들이었는지도....
어느날 내가 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바람처럼 사라지게 되어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하루를 살고 싶어서 마음과 정성을 나에게, 또 내 사랑하는 가족에게,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또 내 주변 사람에게 쏟는 것이 어쩌면 나의 이기심이라 해도 조금이라도 후회를 줄이려 애쓰는 거라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