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뭐니?
어릴 때 흔히 듣는 이 질문에 무엇이 되고 싶다고 꿈이 무엇이라고 정확히 말하는 친구들이 신기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알지 못해서 이 질문에는 항상 대답을 못 했다. 왜? 라는 물음이 이어서 생기게 되고 그 왜? 라는 물음에 답을 할 수 없으니 되고 싶은 꿈이 없었다.
그랬던 내가 무엇을 하고 싶다. 이런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을 때 그것은 '화가' 였다. 그 어린 나이에 무엇을 알까? 그냥 그림을 그리는 것이 너무 좋았고, 왠지 잘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화가라고 부르고...
왜 그랬을까? 나는 내가 화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 꼭 화가가 되는 것으로 여겼다. 예를 들면, A라는 친구가 ‘나는 의사가 꿈이야. 커서 의사가 될 거야’ 라고 말을 하면 나는 내 친구 A가 의사가 되는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내가 ‘화가가 꿈이야’라고 말을 하면 꼭 화가가 되어야 하는 것으로 여겼기에 그 말을 쉽게 하지 못하고 가슴에 두고, 계속 생각해 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정말 화가가 될 것인지 그 어린 나이에 내가 할 수 있는 고민이란 고민을 다 끌어다가 하고 있었던 거다. 그렇게 고민과 생각들을 거쳐 내 가슴에 깊게 새겨져서 더 이상 빼어낼 수 없을 때쯤 드디어 그 말은 내 마음에서 내 목을 타고 입으로 나왔다.
상당히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그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따뜻한 햇볕이 마당 가득 내리쬐던 초여름 어느 날, 나는 푸른 나무가 가득한 숲속에 하얀 폭포가 시원하게 쏟아지는 수채화를 그리고 있었다. 그리던 수채화를 보며 마룻바닥을 닦고 계시던 엄마에게,
"엄마, 저 크면 화가가 될래요. 화가가 꿈이에요" 라고....
그래, 어쩌면 나는 그 말을 그때 하지 말았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아니다. 더 오래 가슴에 두지 않고 그때 말 한 것이 잘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때 내가 들은 말은 ‘여자가 무슨 그림이냐' 였다. 그 뒤에 이어지는 말씀은 '아니 우리 집 딸들은 왜 하나같이 다 그림을 그리겠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네 큰 언니도 너만 할 때 그림 그리겠다고 해서 아빠가 얼마나 말린 줄 아니. 여자가 그림 그려서 굶어 죽지. 어떻게 살겠다는 거니'. 그 말씀에 나는 큰 언니가 나와 같은 것을 원했다는 사실과 여자가 그림을 그리면 굶어 죽을 정도로 가난하게 산다는 것, 그리고 그런 딸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부모님이었다.
따스한 햇볕이 갑자기 얼음처럼 너무 차갑다고 느꼈다. 내가 그린 수채화 속 폭포가 나를 대신해 폭풍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방에서 나의 이야기를 들은 언니가 나와서 그림 그린다고 아빠에게 혼이 난 이야기들을 했다.
그 후로, 학교에서 부득이하게 그려야 하는 과제 이외에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았고 쳐다보지도 않으려 했다. 학교 과제 또한 영혼 없는 그냥 빵점을 면하기 위한 과제 제출만 했을 뿐이었고, 자발적인 스케치조차 더 이상하지 않았다. 마치 ‘그림이 뭔지 몰라’ 그런 아이처럼...
화가가 꿈이라고 말하기 전에 사랑하는 빈센트 반 고흐의 전기를 읽고 며칠을 울며 책을 안고 잠이 들었었던 나는 그 책을 눈에 띄지 않는 다락방 짐 속에 깊숙이 숨겼다. 내가 화가가 되고 싶었다는 기억조차 완벽하게 잊으려고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던 거 같다. 그때는 그게 아픈 건지 뭔지도 몰랐다. 한참 지나서 그림을 보면 전혀 슬픈 그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내 가슴 한쪽이 묵직해진다고 해야 할까? 마치 시퍼렇고 검게 멍이든 부분을 누르면 아프듯이 그런 아픔이 내 심장 어딘가에서 올라오는 거 같았다. 그래서 계속 더 피했다. 꽤 오랜 세월 아프지 않을 때까지...
그리고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 지금은 전혀 아프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림을 보는 것이 하나의 행복이고 즐거움이죠. :)
그동안 대문이 정확히 뭔지도 모르면서 스팀잇을 했으니 저도 참 답답하죠. 처음 쓰는 대문 이미지에 그동안 한 번도 자세히 꺼내 보지 않았던 어릴 적 꿈을 꺼내 보고 이제는 그리고 싶어도 그릴 줄을 몰라 못 그리는 저의 그림 이야기를 놓고 싶었나 봅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아름다운 대문 만들어주신 님 너무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