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부림)
어쩌면 울어야 했을 그날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연락을 받고 같이 살던 희야가 나를 데리러 왔을 때에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고, 이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상황을 대충 눈치채고, 룸메이트는 제발 울기라도 하라고 나에게 말했지만, 눈물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내가 울면 혹여 출근 날짜를 정하고 귀국하는 정든 친동생 같은 희야가 걱정이라도 할까 봐 그랬을까? 괜한 책임감은 여기에서도 나오는 걸까? 잘 모르겠다. 잘 우는 나는 또 이상하게 책임감이 얹혀지면 울지 않는 거 같기도 하다. (그래... 그래서 우리가 사고가 났었을 때 응급실에서도 나는 울지 않았고, 내 속을 모르는 너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나를 보고 너무 서운해했었지. 내가 울면 그 모습을 보고 네가 더 힘들고 걱정할까 봐... 내가 겁에 질려 무너져 내리면, 너는 더 겁이 나고 두려울까 봐, 놀란 심장을 꽉 부여잡고 나오려는 눈물을 어금니 꽉 깨물고 꾹꾹 참은 거였는데...)
그날도 같은 경우였을까? 아니... 그건 전혀 아닌 거 같다.
시도 때도 없이 잘 웃고, 울던 나였는데 왜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는지... 그 당시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왜였을까? 견디기 위해서였을까? 울기라도 하면 내가 무너져 내릴 것 같아서 견디기 위해 울지도 못한 것일까? 아니면 소리 내 울어버릴 힘도 없었던 것이었을까? 그래, 아빠를 잃은 슬픔에서 헤어나오기도 전에 일어난 일에 눈물을 흘릴 힘조차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대신 마음을 닫았던 거 같다. 세상으로부터...
희야를 무사히 한국으로 보내고 쓸쓸히 혼자 이사를 했다. '사람' 과는 거의 말도 하지 않았고, (아니 할 수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 몇 년 동안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가지 않았다. 일만 했다. 24시간 일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정도로... 그렇게 나 홀로 있는 미국 땅에서 세상과 나를 최대한 단절시켰던 행위는 스스로 살아내기 위한 몸부림이었을까? 내 몸이 고장 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을까? 아니 그 이전부터였겠지...언제부터였는지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나는 그저 숨을 쉬기 위해 정신을 집중할 무언가가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일하지 않을 때는 꾸준히 읽어오던 작가의 글을 찾아 읽었다. 어떤 계기로 그녀와 연결이 되었는지 그것이 기억나지 않는다. 미국에 살고 있었던 그녀와 우연히 이메일이 오갔다. 한국에서부터 이미 수년 동안 그녀의 수필를 읽고 있어서였는지 그녀가 너무 친근했고 전혀 어색함이 없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서로의 이메일 속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고, 출판 준비를 하고 있던 그녀는 매일매일 이메일로 나에게 글을 보내왔고, 나는 온 마음과 정성으로 매일 그녀의 글을 읽고 또 읽으며 밤을 새웠다. 많은 어려움을 거쳐 그녀의 글이 무사히 출판되었고, 우리는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귀국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소원도 이루었다. 나는 여전히 세상으로부터 마음을 닫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한 채, 스트레스 속에서 하루하루 말라 갔고, 불면증에 시달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완전 또라이가 따로 없었던 거 같기도 하다.)
그렇게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듣지도 않는 나에게 끊임없이 와서 말을 걸던 조. 내가 듣든 안 듣든 유일하게 나에게 와서 말을 하고 가던 친구. 어느 날조는 그때 분명 물고기 이야기를 시작으로 낚시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에 나오는 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아빠와 함께 마당에 나무를 심던 시절이 떠올랐다. 대추나무, 감나무, 밤나무... 아빠가 보여준 밤송이를 보고 기뻐 날뛰던 때... 내 숨으로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대신에 밤송이들이 심장에 마구 박혀 심장이 피를 흘리는 것 같았다.
아.버.지.
그리고, 그날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식물들과 함께 작은 흙 그리고 빈 화분이 나에게로 왔다.
- 다 올리자니 너무 긴 거 같고... 자르자니 조금 짧은 거 같고... 그냥 여기서 자르고 다음 글 써서 이어서 올리겠습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밝은 글로 찾아오고 싶었는데 죄송하네요. ^^
아주아주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저는 지금 아주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