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아하는 남자애가 있었다. 같은 학원에 다니는, 웃는 얼굴이 아주 해사하고 예쁜 애였는데, 은근히 수줍음이 많아 말수가 적었다.
그 애는 그의 샤이함을 지적하는 선생님 앞에서도 말없이 화사한 미소만 지어 보여 선생님을 전투 불능 상태에 빠뜨린 것은 물론 교실의 모두를 노예로 만들었었는데, 희한하게도 무려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종종 그 얼굴이 맥락 없이 떠오르곤 한다.
느닷없이 웃는 얼굴 밝힘증을 고백하려는 건 아니고, 사실 그 애의 말하는 분위기가 좋았다는 얘기를 꺼내려다 서론이 길어졌다.
샤프심이 떨어졌다든가, 지우개를 빌릴 때라든가, 서로 아는 친구 얘기라든가 어쩌다 한 번씩 얘기를 나눌 때가 있었는데, 그 애가 입을 떼기 직전의 수줍은 머뭇거림이 무척 사랑스러웠다.
단어 하나하나를 골라 정성스럽게 문장을 말하는 느낌이랄까.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말을 참 예쁘게 했다는 이미지만이 남아있다. 그런 분위기로 말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게 된 건 필시 그때부터인 것 같다.
그때도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고, 짓궂게 내 별명을 불러대며 놀리던 개구쟁이들이 있었다. 날 울리기 위해서라면 마음에 없는 말도 사력을 다해 던져서 상처 주던 녀석들.
세월이 흘러 지금 나는 말을 험하게 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본심은 그게 아니라는 걸, 제대로 된 표현 방법을 배우지 못해 어색해서 그런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됐지만, 가끔은 말에 온전한 마음을 담아 예쁘게 말하는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다.
과하지 않게, 담백하게, 솔직하게 말하는 그런 사람. 본심과 다른 말은 결국 본심과 다른 마음을 전한다는 걸 아는 사람. 험한 말은 상처가 되고, 말에 삐뚤게 담긴 마음은 결국은 쏟아져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걸 아는 사람.
마음을 말로 가지런히 정리하는 예쁜 머뭇거림의 시간을 가진 사람.
아무튼, 결국 난 미소 천사 그 애한테 좋아한다는 말도 한마디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 당시엔 '천사는 모두의 천사'로 남겨놔야 한다는 뭔가 이상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난 몇 년 후 꾸준히 날 별명으로 놀려대던 짓궂은 한 녀석의 고백을 받아주었다.
입이 험한 사람은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 첫 번째 계기라면 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