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증여, 대물림..
그에 관한 여러가지 생각들
1
사업으로 성공한 집은 자녀에게 어떻게든 사업을 물려주려고 합니다. 하다못해 사업을 하고 살으라고 장려합니다. 투자로 성공한 집도 그렇습니다. 뭔가 가업이 성공하면 부모들은 그걸 자녀에게 물려주려고 합니다. 그건 부자와 빈자, 여자와 남자를 떠나 거의 모든 인간의 본성입니다.
물론 실패한 집은 죽어도 그걸 못하게 하죠. 인간은 자기 경험에 근거해서 타인에게 그걸 강요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2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지방의 작은 식당.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지만 가게를 크게 확장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자손대대로 가게를 물려 줄 생각이지만 대중들의 시선은 따뜻합니다. 몇대가 음식 하나에 장인 정신을 담아서 하나의 가게를 운영하는 것에 대한 세간의 이미지는 꽤 좋은편입니다.
3
사람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중견기업. 조금만 더 있으면 연간 1조 원의 매출을 돌파하기 직전입니다. 창업자가 피땀흘려 회사를 일궈냈고, 이제 창업자는 회사를 2세에게 물려주려고 합니다. 상장 기업도 아닌데, 회사를 물려주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곱지 않습니다.
4
한때 연예인 부모들과 그 자녀들이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연예인의 자녀들은 별도의 오디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무난하게 공중파에 진출하여 얼굴과 이름을 대중에게 알렸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인맥과 대중에게 알려진 인지도를 등에 업고 연달아 드라마 주조연으로 발탁되거나 앨범을 만드는 등의 활동을 어렵지 않게 이어나갔습니다.
오디션을 보겠다고 인생을 걸었던 수 많은 연예인 지망생들과,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어렵게 음악과 연기를 해나가는 젊은이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습니다. 그것도 그럴것이 공중파는 한정된 자원이고 공공재이니까요. 공중파는 한정된 자원인데 거기에 나가고 싶어하는 지망생은 수십 만 입니다.
대중들은 아무런 심리적 거부감없이 연예인들의 자녀들에게 호감을 가졌고, 팬클럽을 만들었으며,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면서 열광을 하였습니다. 힘들게 일군 기업을 물려주는 것에는 분노하면서 또 이런 부분은 분노하지 않는 것이 의아했습니다.
5
기업인, 연예인은 워낙 대중들에게 노출돼 있어서 그렇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상속과 증여는 활발하게 일어납니다. 지방의 작은 부자들은 물론이고, 일반인 샐러리맨, 큰부자들까지도 전부 자녀에게 자기가 가진걸 물려주길 바랍니다. 특히, 여기에는 꼭 '돈'만 포함되는 건 아닙니다. 앞의 연예인들 사례에서도 보셨듯이 부모는 자신이 가진 노하우, 인적 네트워크와 같은 유무형의 자산들도 자녀에게 물려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성공한 사업가 집안에서 사업가가 나올 확률이 높고, 성공한 학자 집안에서 학자 자녀가 나올 확률이 높은 건 선천적 요인이 아니라 이런 후천적 환경 요인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6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은 '부자가 3대를 못 가도록' 막대한 증여세와 상속세를 물립니다. 그래서 대부분 부자들의 재산은 자녀에게 물려주길 반복한다면 3대에 이르러 소멸되도록 세법이 설계가 돼 있습니다.
이는 '노력에 의해 얻은 부는 인정하지만, 증여나 상속으로 얻은 부는 그보다 덜 인정'함으로써,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고자 하는 각 나라의 의지라고 봅니다. 부자든 빈자든 누구나 다양한 재능으로 국가와 인류에게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를 한 사람이 쥐고 그걸 자손대대로 물려주게 된다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 사회는 경직돼 앞으로 한발도 나아갈 수 없게 됩니다. 시장주의와 자본주의의 존속을 위해서도 기회의 균등은 중요한 화두라고 생각합니다.
7
소비. 저축. 투자.
빈자들은 소비에 열을 올립니다. 중산층은 저축에 열을 올리고, 부자들은 투자에 열을 올립니다.
8
한국에 한해, 억만장자로 불리는 엄청나게 큰 부자들에게 화두는 언제나 상속과 증여입니다. 그들은 자녀가 태어나기도 전에 '어떻게 하면 세금을 잘 회피하면서 예술적으로 자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줄까?'부터 고민합니다. 상속과 증여에 대한 고민은 그들에게 평생에 걸친 숙원사업입니다. 투자는 그 다음 이야기입니다.
9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 회장은 개인 재산이 1조 원이 넘어가면 그건 '내 소유의 돈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 정도의 재산은 '책임감'이라고 말했습니다.
훌륭한 생각이고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의 재산이라면 보통은 현금 형태가 아니라 기업의 소유권이나 또 다른 형태의 유가증권 내지는 채권 등의 형태로 보유하고 있는 재산일 확률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 막대한 재산을 유지해주기 위해서 체제가 안정이 돼야하고, 시스템이 잘 돌아가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억만장자 한사람의 재산을 유지하고 지켜주기 위해서 불철주야 열심히 일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사회를 대표하는 억만장자라면 아무리 자기가 스스로 창업해서 돈을 벌었다고해도 사회에 대한 책임감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0
우리나라는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평등주의 사상이 강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남들의 노력에 대해서 인정도 잘 안하는 나라이고, 남들의 편법에 대해서도 서로간 감시가 심합니다. 그러면서도 본인은 또 남들보다 잘 살길 바라고 기회가 되면 편법을 쓸려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입니다.
이렇다보니 위에서 말씀드린대로, 정치인 부모 밑에 정치인 나올 확률이 높고, 방송인 부모 밑에 방송인 나올 확률이 높고, 성공한 기업은 시간이 흐르면 대부분 자녀에게 물려져 있고, 지방의 작은 땅부자도 죽고나면 그 땅은 자녀들에게 상속이 돼 있습니다. 우리모두가 기회만 되면 이런 저런 방법으로 내가 가진 좋은 것을 자녀에게 물려주길 바라면서도, 또 남이 그러는 건 바라지 않습니다. 잣대는 모두에게 공정하게 들이댈 수 있어야 하고, 주장은 일관적이어야 하며, 스스로도 그 잣대를 지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6번에서 말씀드렸듯 역동적인 자본주의의 존속을 위해서는 '대물림'이 지속되는 사회보다는 '기회가 평등해서 능력자라면 스스로 잘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꿈꿔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