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zoya
“이제 갈 시간이에요.”
그녀가 상념으로부터 나를 끄집어냈다. 우리는 그 유명한 천문관의 천체투영실로 걸음을 옮겼다. 이때까지 별은 내 인생에서 완전히 멀어져 있었다. 그것은 실수였다. 우주에 대한 호기심은 아버지와 나를 잇는 유일한 끈이었으며 그가 내게 남긴 위대한 유산이었다. 나는 그것을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했다. 그랬다면 아버지의 가르침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을 테고, 그랬다면 아들은 비로소 아버지와 같은 진짜 남자가 될 수 있었으리라. 당당하게 우주의 끝과 마주할 수 있는 남자가…….
그러나 한번 식은 열망을 되살리는 일은 새로운 것에 열정을 쏟는 일보다 어렵다. 그 끝이 좋지 않았을 땐 되살리기는커녕 일부러 피하게 될 뿐이다. 사랑에 크게 덴 사람이 그 사랑이 끼쳤던 모든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나 역시 아버지와 공유했던 아름다웠으며 여전히 아름다운 밤하늘을 보지 않기 위해 애써 고개를 숙여 왔다. 물론 그동안은 형편이 안 된 게 한몫했지만 소생한 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피스 천문대에서의 비극 이후 이런 곳은 처음이었다. 내키지 않는 게 이상할 리 없다. 비극의 시발점에서 룰루랄라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하필 상영되는 프로그램도 지구 멸망에 관한 이야기라니. 그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징조가 아니라 완전한 마침표를 찍으려는 누군가의 장난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놀이기구를 타러 가는 아이처럼 들뜬 얼굴로 내 손을 잡고 안으로 나를 이끌었다. 불이 꺼지고 머리 위를 덮은 돔 스크린에 우주가 펼쳐졌다. 눈부시게 발전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된 생생한 화면이 관람객의 탄성을 절로 끌어냈다. 비록 실제로 우주에 나가 맨눈으로 본 적은 없더라도 눈앞에 펼쳐진 가상의 우주가 실제보다 더 진짜 같다는 데 누구나 동의할 정도였다. 그러나 내게는 그런 실감 나는 화면이 오히려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적색 거성이 된 태양 앞에서 대기가 말라버린 지구를 보자 점점 숨이 막혀 왔다. 점점 부풀어 오르는 태양에 지구가 먹혀 버렸을 때 결국 나는 그녀를 놔두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잭! 괜찮아요?”
뒤따라 나온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들어 보였다. 애써 여유 있는 척했으나 속은 당혹스럽고 창피했다. 나는 숨고 싶은 심정으로 아무렇게나 둘러댔다.
“미안해요. 아무래도…… 속이 좀 거북해서요.”
“어디가 어떻게요? 정확히 말해 봐요.”
“진정해요. 안 죽으니까.”
전에 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자세히 살피던 그녀는 마침내 같은 결론에 이르렀는지 내 손을 부드럽게 잡고 이끌었다.
“신선한 공기를 쐬면 더 나아질 거예요.”
우리는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넘기는 바람을 맞으며 옥상 정원을 산책했다. 그녀는 갑자기 환자가 된 나를 편하게 해 주려는 의도인지 침묵을 지켰다. 덕분에 나는 내가 왜 그날의 지미처럼 공황에 빠졌는지 생각할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일란성 쌍둥이는 유전자가 같다는 뜻이다. 거기다 같은 환경까지 공유한다면 특정 대상에 대한 공포를 일으키는 조건과 형질이 똑같이 형성될 수도 있다. 이 추측은 두 가지를 빼면 그럴듯했다. 그때 그리피스에서 나는 왜 멀쩡했는가? 그리고 나는 왜 이제 와서 이 지랄인가?
“좀 어때요?”
그녀가 여전히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이제 다 나았어요.”
“아픈 걸로 사람 놀라게 하는 게 특기인가 봐요.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운데요.”
“이런, 앞으론 못 써먹겠군.”
그녀는 소리 없이 웃었고 바람은 소리 없이 불었다. 우리는 바람을 따라 밤하늘로 눈을 들었다.
“오늘은 별이 예쁘게 떴네요.”
그녀가 자신의 에메랄드빛 우주에 별을 담으며 감탄했다. 차가운 하늘에는 광공해에도 불구하고 몇몇 반짝이는 것들이 떠 있었다.
“진짜 항성은 몇 개 안 돼요. 여기서 보이는 건 대개 인공위성이거든요. 이놈의 광공해 때문에 여기 사는 사람들은 평생 진짜 밤하늘이 뭔지도 모르고 살다 죽을걸요.”
“나는요, 저게 인공위성이든 행성이든 아니면 UFO든 상관하지 않아요. 그냥 저 위에서 낭만적으로 빛나는 것만으로도 좋은걸요.”
그건 첫 데이트 때 했던 말의 반복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따져 물었다.
“본질은 중요치 않고요?”
“내 생각에 사람들 대부분에게는 그게 별의 본질일 거예요. 깜깜한 밤하늘 위에서 반짝이는 거. 올려다보면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그게 별인 거죠.”
“우리는 입을 맞추고.”
나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조금은 급하게 입을 맞췄다. 그녀의 부드럽고 따뜻하고 촉촉한 입술이 사르르 녹으며 내 정신은 아득해져 갔고 정수리에선 찌릿한 전기가 느껴졌다. 코페르니쿠스는 사랑을 모르는 남자였음이 분명하다. 사랑을 했더라면 그는 분명 느꼈을 것이다. 우주가 자신을 중심으로 돌고 있음을, 이때의 나처럼 분명 느꼈으리라. 그런데 입술을 떼고 나서 내가 본 건 예상과는 다른 그녀의 진지한 표정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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