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인명피해를 남기는 범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두가지다. 우선 처벌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많은 인명피해를 남기는 사건들의 가해자들은 대부분 자살로 소동을 끝내고, 체포된다고 해도 그들이 받을 형벌은 그들에게 별 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 한다. 가해자들은 합리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상태에 있다. 절망에 빠졌거나, 정신적으로 불안하거나. 현대사회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처벌이지만, 논의를 위해 처벌의 범위를 확대해도 마찬가지다. 고문은 효과가 없다. 고문이 두려울 정도의 정신도 남아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고문의 위협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
가족, 이웃까지도 연좌로 처벌한다면 어떨까? 마찬가지로 현대사회에서 그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용납되지 않을 일이지만, 시행한다고 해도 큰 효과를 거두기는 어렵다. 흉악범죄의 첫 희생자들이 바로 이웃과 가족 아닌가? 감시의 효과는 있을 수 있다. 정신적으로 무너질 징조가 보일 때, 가족과 이웃이 이를 포착하고 필요한 치료를 받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가족과 이웃이 전문가도 아니고 징조를 적절한 때에 포착할 수도 없고, 적절한 처방을 알지도 못 한다. 정신의 붕괴를 가속화하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이처럼 사후에 일어날 처벌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지만, 한가지 단서는 찾았다. 만약 가족, 이웃이 아닌 국가가 처벌의 대상이라고 한다면? 책임이 국가에 있다면 국가는 총력을 기울여서 예방에 힘쓸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수 있다. 하지만 책임은 국가에 두되, 국민들이 언제나 행정부를 해산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경우라고 한다면 어떨까? 단, 이 경우에는 조건이 하나 필요하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하며 일시적인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국가에 책임을 묻지는 않을 것이라는 조건. 그렇다면 국가는 최대한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며 예방에 힘을 쏟는다. 적절한 처방이 가능한 정신 전문가들을 육성하고 교육기관들에 배치한다. 내담자의 프라이버시는 완벽하게 지켜지며 일체의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모든 책임의 주체를 국가로 귀속시키면 기록을 남길 필요가 없다. 만약 국가가 배치한 전문가가 잘못된 처방으로 아동의 정신건강을 해쳐도 국가의 책임이 된다. 국민들이 합리적이라면 국가에게 이러한 요구를 할 수 있으며, 또한 국가는 은폐 등으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국민들이 충분히 현명하다면. 이게 첫번째 방법이다.
두번째는 공권력을 통한 예방이다. 극도로 강력한 공권력을 통해 잠재적 범죄자를 범죄가 행해지기 이전에 색출하고 예방한다고 하자.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시뮬레이션 기술이 발달하면, 불가능할 일은 아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에는 반하는 일이지만,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것도 인간의 이해가 부족할 때 수립된 원칙이 아니겠는가? 국가가 충분히 책임감을 지니고 있고 국민의 감시가 소홀하지 않다면 범죄자의 색출 이후도 강압은 최대한 적을 것이다. 심리치료와 원인 제거 등으로 예방에 초점이 맞춰진다.
논의를 이어가다보니 모순이 생겼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시뮬레이션이 발달해서 충분히 사람들의 이상행동을 예측, 예방할 수 있는 사회라면, 애초에 심리가 위태로워서 공권력을 동원하고 치료, 재사회화를 진행할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물론 기술이 도입된 초기에는 필요할 것이다. 기존에 살아온 사람들이 있기에. 시대가 가면서, 새로운 세대는 사회를 해치지 않도록 충분히 사회화 된 후에 사회에 나오게 될 것이다. 양육의 실패 또한 국가의 책임이 되기에, 국가는 양육 매뉴얼을 배포하고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관심을 쏟게 된다. 아니면 아예 공동 양육을 하게 될까? 국민들이 그걸 허용할 리 없다. 그렇다면 자격제는 어떨까. 진정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으나, 사회화에 지금보다 관심을 기울일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질서를 해치지 않도록 완벽히 사회화가 된 세대의 삶은 어떨까? 범죄에 대한 위협도 없고 타인에 대한 강압도 없다. 강압이란, 타인의 정신건강을 해치는 행위고, 타인의 정신건강을 해쳐 타인이 범죄자가 될 수 있을 정신을 가지게 만드는 행위다. 능력에 비관해서 무너진 사람들도 있다. 질투에 눈이 멀어 잘 난 사람을 해치기도 한다. 뒤쳐진걸로 무너질 정신이 문제일까, 아니면 뒤쳐진 사람이 존재하는 사회구조가 문제일까? 나는 전자에 주목하긴 한다.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정신을 가다듬는걸 돕는다면 능력의 격차 또한 수긍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물론 사회에서 뒤쳐진 사람들 또한 양질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야겠지만. 만약 후자에 주목하면 능력의 격차가 있는 모든 분야는 사라져야 한다. 이는 사회화로만 이룩할 수 있는 경지는 아니며 생명공학 등을 토대로 강제로 인간을 동일하게 만드는 수 밖에 없다. 심지어 그렇게 극단적인 절차를 거쳐도 개인간의 차이는 결국 나타날 것이다.
정리하면, 격차는 존재하되 패배자는 없는 사회가 기술적으로, 철학적으로 충분히 발달한 사회의 청사진이다. 타인에 대한 비난은 없고 누구도 돌발행동을 하지 않는다. 누구도 경쟁에서 밀린 사실에 대해 비관하지 않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찾아나서는 일이 두렵지 않다. 그리고 사회는 개인의 새로운 도전을 격려하고 기회를 제공한다. 이 사회에서는 승자에 대한 찬사도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승자에 대한 찬사가 자신의 패배를 상징하진 않기에. 오히려 찬사는 질투가 섞이지 않은 순수한 찬사일 것이다. 그들은 질투할 이유가 없기에, 자신의 삶에 충분히 만족하기에.
흔히 유토피아를 상상하라고 하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는 한다. 완전히 거세된 삶을 제시하곤 한다. 유토피아에서는 굴곡이 없을 것이라고, 성공의 환희도 경쟁의 쾌락도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꼭 그렇진 않은 것 같다. 단지 패배자가 없을 뿐. 성공의 가치는 줄어들지 않는다. 유토피아를 환상이라 하지 말라.
오늘의 키워드는 님의 "사회화, 성공, 프로그래밍화된 사회질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채택되진 않았지만 많은 키워드들을 남겨주신 여러분들께도 감사와 사과를 드립니다. 여러분들의 키워드가 나빴던게 아니라 제 취향과 능력이 변태적일 뿐입니다.
그나저나 제가 읽어도 정신이 하나도 없는 글이지만, 그래도 상상을 나누고 싶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정신은 하나도 없지만 너무 즐거운 컨텐츠입니다. 저만 즐거우면 큰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