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닌 다른 존재의 정신을 온전히 들여다 볼 수는 없다. 우리는 정신을 분석하기에 앞서, 정신의 전체를 바라보는 것부터 할 수 없다. 완벽하게 관찰하더라도 인간에게는 아직까지 정신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는 지식이 없으니, 현재 인간의 수준에서 행하는 정신에 대한 분석은 정신의 파편에 대한 어설픈 분석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최대한 객관적으로 분석하려 해도 아직까지 인간은 완전하게 정신을 분석할 수 없는데, 주관이 섞이기까지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자신의 정신에 대한 분석은 더욱 큰 왜곡이 있다. 따라서 지금부터 할 스스로에 대한 진단도 완전히 틀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한번 해보려고 한다. 최소한 재미는 있을테니.
모든 사람들은 변한다. 삶의 형태가 변하고, 변화가 찾아온 삶에서 취해야 하는 행동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면 그에 맞추어 인지도 변할 수 밖에 없다. 반대로 변하지 않기도 한다. 삶, 행동, 인지가 달라져도 뇌기능에 이상이 생기기 전까지는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나도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 상황이 달랐다. 삶의 형태가 변하지 않았고, 삶에서 취하는 행동이 변하지 않았고, 따라서 인지도 변하지 않았다. 짧지 않은 시간을 나는 정말로 아무런 변화 없이 보내고 있었다. 변함 없는 삶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다. 뇌는 예측을 위한 도구고, 효과적인 예측을 위해서는 기존에 가진 것과 아무 차이 없는 경험을 소중하게 간직하기보다 새로운 경험만을 저장하는게 유리하다. 그래서 매 순간 뇌는 경험을 기존에 가진 기억과 대조한다. 나이가 들며 사고 등으로 뇌에 이상이 생긴 것도 아닌데 기억력이 나빠지는 이유는 뇌기능이 저하된게 아니라, 이미 너무 많은 경험을 했기에 새로운 경험을 할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최근 몇년 간의 기억이 흐릿하고 순서마저도 모호하다.
변화의 기회는 몇번 있었다. 하지만 매번 나는 변하지 않았다. 당연히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감정의 파편들을 긁어 모아본다. 삶이 변하면, 행동이 달라져야 하고, 달라진 행동에 맞추어 인지도 변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행동이 달라지지 않으면 새로운 삶에 맞지 않고, 달라진 행동에 맞추어 인지가 바뀌지 않으면 인지부조화로 인해 괴로울 것이다. 따라서 내가 새로운 삶을 살기로 했다면 행동과 인지는 그 삶에 맞추어 연쇄적으로 변화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선택한 것은 새로운 삶일 뿐인데 행동과 인지도 바꾸어야 한다. 모든게 새로운 상태는 이전과 다르다. 변하기 위해서는 가진 것을 내려놓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없었다. 자기애와 낙천적인 성향은 나에게 굳이 새로운 경험을 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다며, 지금 가진 행복을 놓칠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한다. 비관적인 시각 또한 그 입장에 힘을 실어준다. 변화 후는 전혀 행복하지 않을 수 있고, 뒤늦게 옛 행복을 다시 찾으려 해도 이미 놓친 이후일 것이라며 경고한다. 낙천과 비관의 독특한 결합이다.
사실 이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그럼에도 내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변화가 힘들지도 괴롭지도 않다. 힘들거나 괴로울만큼 극적인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미동도 없이 머물러 있던 기간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지금 나는 어떤 목적으로 어떤 계기로 움직이고 있을까? 나는 지금 관성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삶이 바뀌어서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어서 인지가 바뀌고, 행동과 인지가 바뀌어 다시 삶이 바뀐다. 다시 삶이 바뀌어 다시 행동은 바뀌고... 그렇다면 최초의 움직임은 어떤 계기였을까?
우선 새 삶에 대한 기대감이 비관을 이겨냈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미 가지고 있는 행복을 내려놓을 위험을 감수하고도 기꺼이 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새로워진 삶의 형태에 맞추어 행동과 인지가 변할 것도 감수해야 했다. 문제는 나에게는 새 삶을 그려낸 청사진이 없다. 그렇다면 내가 모르는 삶에 대한 기대감이 비관을 이겨냈는가? 그래서 나는 최초의 움직임의 계기를 설명할 수 없고, 지금도 계속해서 움직이는 이유는 관성 때문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관성에 의해 움직인다면 습관에 의해 움직이는 것과 같은걸까? 그리고 습관에 의해 움직인다면 긍정적인게 아닐걸까? 잘 모르겠다. 아무렴 어쩌겠는가. 움직일 수 없던 사람이 멈출 줄은 알겠는가? 멈출 줄도 모르기에 그냥 흘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