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내 능력? 체질? 아무튼 그걸 동정해. 목이 마르면 선인장이 자란다니, 너무 바보 같잖아? 나도 알아. 바보 같아. 나는 선인장 때문에 죽을뻔 한 적도 있어. 그런데 사람들은 차마 바보 같다는 말을 못 하고 어떻게든 좋게 말을 한단 말이야. 가장 만만한게 개성이야. 개성 있지 않냐고. 그런데, 어차피 항상 물을 마실텐데, 선인장은 자랄 일도 없을텐데, 물을 자주 마시는게 무슨 개성이야? 나름 나를 배려한다고 하는 말이겠지만, 별 필요 없는 배려야. 이렇게 말하면, 또 나를 배려하려고 해. 좋은 소리를 늘어놓아. 다시 말하지만, 별 필요 없는 배려야. 왜냐면 사실 나는 내 바보 같은 선인장을 꽤 좋아하거든.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냐고?
첫만남을 생각해봐. 어지간히 사람 잘 사귄다는 사람들에게도 첫만남은 쉽지 않은 법이야. 공통점이 아주 많고, 기회만 있었다면 아주 좋은 사이가 되었을 사람들도, 첫만남에서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 하면 관계를 가질 여지가 없어. 그래서 사람들은 공부를 한다고. 상대의 관심사를 찾고, 평소에 즐기지 않는 활동도 좋아하는 척 하며 말문을 열어. 사람을 잘 사귄다는 사람들에게도 특별한 능력은 없어. 그냥 공부를 열심히 하는거지. 뭐, 살인적인 미소를 가지고 있다면 편하긴 하겠네.
아마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어도 첫만남은 어려웠을거야. 첫만남에서 대뜸 "당신의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는 사람에게서 흥미를 느낄 사람이 어딨어? 무서워하거나, 미친 사람이라 생각하겠지. 밝히지 않는다고 해도 마찬가지야. '흥미 없음'이라 마음에 적혀있는 사람의 생각을 읽어서 뭘 하겠어? "당신은 나에게 흥미가 없군요."하면 신기하다고 흥미를 가져줄까? 마음 먹고 활용하면 못 써먹을 능력은 아니지만, 공부를 많이 해야할거야.
그런데 나는 그냥 제때 선인장이 자라도록 적당히 목이 마른 채로 들어가서 자리에 앉은 뒤에 화분 하나를 꺼내면 끝이야. 물론 연습을 좀 하긴 했어. 처음에는 아무데서나, 아무때나 자랐거든. 이제는 타이밍도, 위치도 조절할 수 있어. 그래, 그렇게 화분에 선인장을 피워내면, 그 다음엔 신비로운 표정. 이것도 연습을 좀 했어. 그럼 시선을 확 끌 수 밖에 없겠지? 그 다음은 식은 죽 먹기야. 나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 필요 없어. 그냥 신비감을 주고, 그 다음에 내 얘기를 하는거야. 신기하게도 나는 내 삶을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그냥 사소한, 바보 같은 선인장 이야기를 좀 했을 뿐인데, 상대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줄줄이 읊어. 얼마나 쉬워?
어디 이것 뿐인줄 알아? 나도 긴장할 때가 있고, 긴장하면 표정관리가 어려워. 너는 긴장하면 뭘 해? 시선을 피해? 휴대전화를 쳐다봐? 나는 냉수 한잔이면 끝이야. 표정도 감추고, 긴장도 풀어. 다른 사람들에겐 어려운 일이야. 물을 너무 자주 마시면 긴장한 티가 나잖아. 하지만 나는?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야. 내가 물을 얼마나 자주 마셔야하는지, 나 말고 누가 알겠어?
이제 내가 왜 선인장을 좋아하는지 알겠지? 세상에 쓸모없는 능력은 없어.
모티브를 주신 씨마님, 오늘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