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톱에 흰 별처럼 박혀 있는 조개 껍데기를 주웠다.
"호사란 편안함을 느끼는 거라오. 단순히 편안한게 아니라, 감싸이는 듯한 편안함."이라고 로사나 오를란디가 말한다. 15년전 그 호사란 것을 누리고 싶어 집을 나왔다.
1인가구라는 말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나의 독립을 끝까지 반대했고 나는 포기한 척 연기하며 은밀하게 "호사"를 준비했다. 집에서 버스로 15분 거리에 있는 회사, 그리고 그 회사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나만의 공간. 호기롭게 월세계약서를 쓰고 보름에 걸쳐 식기와 가전제품을 사다 놓았다. 모든 준비가 끝난 날 밤,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예민한 인간이었다. 나에게 호사라는 것은 샤워한 후 개업과 돌잔치 문구가 없는 뽀송한 새 수건으로 몸을 닦는 것이었고,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수십 번 반복한 밑반찬통을 더이상 보지 않는 것이었다. 작은 호사를 위해 불편한 자리에서 한걸음 옮기는 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오늘 낮에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실제로 말을 건 것은 아니고 막 SNS에 올라온 짧은 글이었는데 그 어조가 너무 다정해서 제발 알아채 달라고 헛기침까지 하는 것 같았다.
윌리엄 워즈워드의 고향 가까이 왔습니다. 13 부터 253 중에 좋아하는 숫자를 달아주시면 몇 구절 제 맘대로 번역해 띄워볼까 해요. 편지 대신으로요.
나는 88페이지가 궁금하다고 답글을 달고 기다렸다. 잠시 후에 편지보다 애틋한 문장이 도착했다.
내 생각 속에는 한 어둠이 있었으니,
그걸 고독이라 부를까, 혹은 백지의 단념이라고.
그 어떤 일상 속의 형체도 그것을 닮지 않았으며,
그것은 나무도 바다도 하늘도 아니었고,
들판의 초록도 아니었네.
해가 질 때쯤 그 문장을 들고 광안리로 출발했다. 운동화를 벗고 부드러운 모래에 발을 내려놓았다. 파도가 달려와 발 밑에서 부서진다. 오랫동안 그러고 서 있었다. 모래톱에 흰 별처럼 박혀있는 조개껍데기를 주웠다. 제일 예쁜 것을 골라 미쉘양에게 선물했다. 집에 도착한 미쉘양은 주머니 속에 있는 것을 죄다 끄집어냈다. 살펴보니 아까 건네준 조개껍데기 하나와 검은 분꽃 씨앗이 2알이 있었다. 분꽃 씨앗 2알과 조개껍데기 하나, 아주 먼 곳에서 번역된 싯귀 한 구절을 데리고 내일로 넘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