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도 예쁘고, 커피도 맛있는 나이브브류어스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분명해지는 것이 있다면 선택의 기준이다. 난 소유하기보다는 경험하기를, 그 자리에 머물기보다는 움직이기로 정해놓았다. 그렇게 강력하게 정해놓지 않았다면 침대밖으로 1미터 빠져나오는 것도 귀찮아했을 것이다. 특히 나는 잠자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여름 한 철만 먹지 않고 잠만 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한다. 빳빳하게 펴진 시트 위에서 까쓸한 이불을 배까지 덮은 후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 책을 몇 장 읽은 후 바이너럴 비트를 들으며 꿈나라로 가는 취침 시간은 하루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울수록 움직여야 한다. 마음속에서 강박같은 체크리스트가 나를 일으켜 세운다. 하우스메이트가 기해일주인데, 그녀가 가지고 있는 亥기운-분주하게 이곳저곳을 다니며 잡지식을 모은다-이 나에게도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비교적 큰 에너지를 들이지 않고 새로운 공간에 나를 둘 수 있는 방법은 카페방랑자가 되는 것이다. 비록 선크림을 치덕치덕 바르고 뙤약볕에서 헤매더라도 도착한 곳의 음악이 그 공간에 어울리며 아이스 아메리카노까지 맛있다면 더할나위 없다. 그렇게 하루 하루는 내가 방문한 카페의 간판으로 인해서 구분되고 있다.
타 지역에서 손님이라도 오면, "바다가 좋아요 아니면 숲이 좋아요?" 라고 묻는다. 영도는 둘 다 있기에 취향대로 선택하면 된다. 작년 여름에는 바다 뷰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부산에 놀러올 때마다 '카린 플레이스'에 데려갔다. 더운 여름날, 북항대교와 부산항을 보며 느긋하게 앉아 있다가 저녁에 옥상에 올라가면 파노라마 뷰로 펼쳐지는 노을을 감상할 수 있다.
노을이 없는 시간, 카린 플레이스
노을이 있는 시간, 카린 플레이스
이번 주에 찾아간 곳도 영도에 있는 카페였다. 올 여름 새로 태어난 곳. 음료를 만들고 주문하는 공간과 음료를 마시는 공간이 분리되어 있었다. 손님들은 어둡고 시원한 공간에 앉아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기차역의 대합실 같이 느껴졌다. 그곳의 이름은 신기숲이다.
대나무로 둘러싸인 신기숲
신기숲에 앉아 한 때 유명했으나 사라졌던, 없었지만 새로 생겨난 카페들을 생각했다. 통돌이로 커피콩을 볶아서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주던 곰다방부터 시작해서 프로밧으로 심혈을 기울여 커피를 볶고 내려주는 나이브브류어스까지. 단 한 번 밖에 방문하지 못했지만 난 이리카페만큼이나 헬카페를 좋아했다. 휴고에서 시작해 인디고, 인앤빈, 베르크로 이어지는 길과 내가 머물렀던 카페들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또 생각나는 베르크의 에디오피아 싱글 아메리카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