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적으로 연약한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 무리에 속하는게 유리하다. 그래서 인간은 무리짓기의 본능을 가지고 있으며, 아무런 무리가 아니라 배타적인 경계를 갖고 있으며 내부의 결속은 견고한 무리에 속하고 싶어한다. 무리의 구성원과 외부인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확고한 배타성을 얻는다. 확고한 배타성은 집단에 결속을 가져다 준다. 그래서 다양한 집단에서는 시각적으로 구분하기 위해 문신, 장신구, 유니폼 등을 활용한다. 집단 내부인과 외부인을 구분하기 쉬워지면 구분은 낙인으로 작용한다. 이때부터 외부인은 단순히 집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배척해야 될 사람이다. 차별은 이렇게 시작한다.
문신, 장신구, 유니폼 등이 없이도 선천적으로 시각적으로 구분이 가능한 것에서 출발하는 차별도 있다.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성질에 기반한 차별이다. 바로 인종차별이다. 교통수단이 발달하기 전에는 인종 간의 교류가 적었고, 따라서 각각의 인종들은 각각의 문화를 형성했다. 인종만이 다른게 아니라 문화가 다르고, 종교가 다르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다른 인종은 다른 문화권에 속했으며, 다른 신을 모셨다. 많은 것이 다른 존재를 배척하는건 공통점이 많은 존재를 배척하는 것에 비해 쉽다. 그리고 외부의 적은 불행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게 해주어, 내부의 결속을 공고하게 한다. 단단한 결속을 지닌 집단에 소속되는건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 그 집단이 힘까지 가지고 있다면, 집단에 속하는 것만으로도 물질적인 혜택을 누릴 수도 있다. 정신적, 물질적인 혜택을 동시에 누리는 것이다.
차별의 뿌리를 뽑는건 그래서 어렵다. 철저히 본성에 부합하는,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일정 수준 이상의 소양 없이는 차별이 왜 그른 것인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도 어렵다. 차별이 왜 그른가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해도, 차별적인 태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깊은 사유 없이는 자신이 행하는 차별과 기호를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 중에서도 자신도 모르게 차별을 하지 않는 분은 단 한 분도 계시지 않을 것이다. 나도 물론이다. 같은 인종이며, 같은 문화권에 사는 사람에 대한 차별이라고 해도 차별은 차별이다. 공통점이 적다고 해서 '싫은 사람'에 누군가를 몰아넣고 차별적인 태도를 보이는건 인종차별과 다르지 않다. 학력, 지연, 혈연 중심의 사회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동시에 학력, 지연, 혈연 중심의 사회구조에서 혜택을 보는 이들을 혐오한다. 선후관계는 중요하지 않다. 혐오에 정당방위란 없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Detroit: Become Human)은 예전에 소개한 적 있는 게임이다. 플레이어가 조종하게 되는,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인물들은 흔하다면 흔한 캐릭터들이다. 감정과 자의식을 갖게 된 인공지능이란, 인공지능이 기술적으로 가능한 존재인가조차도 알 수 없었던 시대에 이미 다루어진 소재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1940년대에 이미 썼던 소재이니 말이다. 인간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안드로이드에 표식을 새기고 차별하는 내용도 흔하다.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는 블레이드 러너의 레플리카들도 인간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지만, 그들에게는 구분을 위한 낙인이 있고, 인간들은 그들을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다.
오른쪽 관자놀이에 있는 링 형태의 LED만 없어도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구분할 수 없다.
본 게임은 정교한 조작을 요구하지도, 전략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스토리텔링에 중점을 둔 인터랙티브 무비에 속하는 게임인데, 소재가 식상하다면 이 게임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궁금할 수 있다. 분명 본 게임은 특별한 소재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 게임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미래입니다."라고 말 할 수 있을만큼 정교한 미래상을 그려내고 있다.
안드로이드로 인해 높아진 실업률, 삶을 잃은 인간들의 분노, 그리고 그 분노는 차별로 나타난다. 대중교통에는 안드로이드들을 격리하는 공간이 있으며, 각종 가게들에 안드로이드의 출입은 금지되어있다. 폭력을 휘두르는 시위자들도 있다. 안드로이드의 활동 영역은 날이 갈수록 넓어지니, 실업자가 되는 인간은 많아질 수 밖에 없다. 얼핏 정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안드로이드 생산을 금지한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분노는 방향을 잃고 익숙한 방향, 구분되는 무언가를 차별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자동화는 당장에는 실업자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끊임 없는 자동화를 거쳐 인간의 노동시간은 크게 줄어들었으며, 삶의 질은 크게 향상되었다. 생계를 위한 억지 노동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고, 억지 노동 없이도 생게를 이어갈 수 있는 사회를 설계하는건 정부의 몫이다. 실업은 안드로이드의 책임이 아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여, 일자리를 찾아온 외국인들에게 자국민들의 실업의 책임이 있는건 아니듯.
환경오염에 대해서도 곁가지로 다루고 있다. 해수면 상승으로 해안가에 살던 부자들은 내륙으로 떠나고,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를 하던 사람들은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어진다. 부자들이 내륙으로 떠나면, 돈은 돈을 부르고, 산업이 발달한다. 물가는 오르고, 기존에 내륙에 살던 사람들의 삶은 파괴된다. 현실 사회에서도 도시가 발달할 때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여기서도 책임은 국가의 몫이다. 서민들의 삶이 파괴된건, 서민들의 삶보다 자신의 안전을 먼저 생각한 부유층의 책임이 아니다.
나는 아직 게임을 많이 진행하지 않았다. 이미 나에게 많은 생각을 남긴 이 게임이, 나에게 또 어떤 생각을 하게 할까? 코너, 카라, 마커스의 삶은 어떻게 흘러갈까?
스토리 텔링을 중시한 게임인만큼, 스포일러 없이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본문에서 언급된 내용들은 도입부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들이며, 선택에 따라서 다른 이야기의 흐름은 크게 변합니다.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은 트레일러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