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를 위해 개인이 희생할 수 있다는 사상이 얼마나 위험한가? 대의에 눈이 멀어버리면, 대의를 따르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자유와 평등을 무시할 자격이 있는 양 행세한다. 그래서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인권을 철저히 무시했으며, 때로는 전체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같은 행태를 보이곤 한다.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으며 자유와 평등을 해치는 짓거리를 한다.
감출 자유, 드러낼 자유는 모두 소중하다. 국가가 '대의'를 위해 개인들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침해한다면 인권에 대한 거대한 탄압이고 개인들은 저항한다. 감추고 싶은 것을 감추기 위한 투쟁이다. 국가가 개인들의 사상을 짓누르려고 해도, 개인이 스스로 사상을 가지고 그를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도 투쟁했다. 드러냄을 위한 투쟁이었다.
Don't ask, don't tell은 미군 내 성소수자가 스스로에 대해 밝힐 수 없도록 하는 제도였다. 만약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군에서 나가야 했다. 이는 드러냄에 대한 자유를 침해 했으며 지금은 폐지되었다. 과거에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군에서 쫓겨난 성소수자들도 다시 군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고 한다. 반대로 감춤의 자유를 침해 당하는 강제 아웃팅에 고통 받는 성소수자들도 있다. 성정체성, 성적지향이 가십거리로 다루어지는건 굳이 뒤따르는 차별이 없더라도 충분히 불쾌한 경험이다.
최근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치마는 여성성을 강요하는 의복이기에 주체적인 여성상에는 어울리지 않고 여성인권을 억압한다는 입장과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 입는다는 입장이 충돌했다. 노출이 심한 복장들이 여성인권을 해친다고 한다. 반대로 무슬림 여성들은 자신들의 신체를 드러낼 수 있는 자유를 위해 투쟁한다. 본질은 드러냄도, 감춤도 아니다. 자유로운 선택이냐, 강오에 의한 선택이냐만이 중요하다. 스스로의 자유로운 선택처럼 보이는 것도 실은 사회에 의해 강요 당해서 세뇌된 것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같은 논리로 계속해서 들어가면 스스로의 선택이란 하나도 남지 않는다.
인권을 외치며 인권을 짓밟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대의에 눈이 멀어버려서 스스로에게 타인의 인권을 짓밟을 정당성을 부여하는 경우다. 피해자가 원치 않음에도 사건을 계속해서 언급하며 피해자와 주변 사람들의 고통을 끊임 없이 연장한다. 피해자는 사건을 잊고 상처가 치유되길 원하는데, 상처가 낫지 못 하게 계속해서 해집곤 한다. 대의에 눈이 멀어버리면, 대의를 따르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자유와 평등을 무시할 자격이 있는 양 행세한다. 인권을 따른다는 대의가 인권을 해칠 정당성을 주지는 않는다. 소수가 대의를 위해 비자발적으로 희생하는 일은 전체주의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며 절대로 정당화 될 수 없다.
국가는 국민들의 안전을 최대한 보장할 의무가 있으며, 이를 위해 국민들의 사생활을 침해한다. 개인의 스팩트럼에 따라서 이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양극단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안전과 사생활이 모두 중요하며 최대한 사생활을 적게 침해하면서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밖에 없다.
국가는 국민들의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서 숨길 자유를 침해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를 시작으로, IT 기업들은 개인에게 더 효과적인 광고를 노출하기 위해서 개인의 숨길 자유를 침해했다. 시간이 지나면 맞춤형 광고가 노출되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데이터가 쌓이면 사람의 결정을 예측할 수 있고, 자극이 결정을 어떻게 바꾸는가에 대한 데이터도 축적된다. 계속해서 쌓인 빅 데이터는 한 사람을 통제할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통제 당하는 사람은 스스로 그 사실을 알지 못 할 것이다.
그 때가 온다면 데이터를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유권자를 조종할텐데 과연 민주주의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침해 당한다는 사실도 알 수 없을 인권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 때가 올 필요도 없을지 모른다. 이미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