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적된 권력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YouTube에 비해서 압도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하자. 그런 당신은 YouTube를 넘어설 플랫폼을 세울 수 있을까? 절대로 그럴 수 없다. YouTube는 이미 축적한 부와 권력을 통해 당신을 손쉽게 짓밟을 것이다. 광고주에게 당신의 플랫폼에 광고를 실지 않도록 하는게 어려울까?
자본주의의 무서움은 이것만이 아니다. 당신이 엄청나게 획기적인 알고리즘을 만들어서 사용자가 원하는 영상을 아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하자. 만약 사용자들이 손쉽게 원하는 영상을 찾을 수 있어, 당신의 플랫폼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어든다면 당신의 플랫폼의 매출은 줄어든다. 플랫폼의 매출이 줄어들면 컨텐츠 창작자들에게 제공할 돈이 줄어든다. 그래서 컨텐츠 창작자들이 떠나가면 컨텐츠 소비자도 줄어든다. 이를 막기 위해 광고단가를 높이면 광고주를 구하기가 힘들고, 광고를 더 많이 더 자주 노출하면 컨텐츠 소비자는 줄어든다. 당신은 소비자에게 더 높은 효용을 제공한 대가로 도태될 것이다.
유통과정이 복잡해져서 아이디어보다 중개업자가 더 많은 부를 누리기도 한다. 중개업자들은 독점적인 권력을 행사하며 아이디어에게 주어질 정당한 보상을 가로챈다.
이처럼 더 이상 자본주의 경제란 희소한 재화를 분배하기 위한 원리가 아니다. 정보의 불균형이 극심해지면서 생산자는 더 이상 소비자에게 가져다 주는 효용을 토대로 보상을 얻지 않는다. 첫단추가 어긋나면 아무리 단추를 잘 꿰어도 깔끔하게 정돈될 수 없다. 그리고 첫단추부터 틀렸다면 모든 단추를 풀어야 한다. 그 단추를 풀어가는 과정 중 하나가 암호화폐 생태이며, 단추를 푸는 도중에는 어긋나게라도 단추를 꿰어두었을 때보다 혼란스럽다. 그게 지금 암호화폐의 위치다. 그리고 단추를 풀고 다시 첫단추를 꿰어야 할 사람들도 결국 단추가 어긋나게 꿰어진 옷을 입고 살아가던 사람들이기에, 첫단추를 정확하게 꿰는 일은 어렵다.
그래서 현재 암호화폐 생태는 완벽하지 않다. 그리고 완벽하지 않음을 토대로 암호화폐 생태를 깎아내리는 것도 바르지 않다. 스팀잇도 마찬가지다. 완벽하지 않다. 아이디어에 당연히 돌아가야 할 보상을 보장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 중 하나다. 스팀잇을 비판할 때는, 항상 이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암호화폐 생태를 이해하지 않고 하는 비판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편의성을 제외하고 비판자들이 지적하는 문제는 모두 스팀파워의 영향력에서 나온다. 스팀파워를 토대로만 보상을 얻을 수 있기에, 높은 스팀파워를 가진 사람에게 아부하고, 높은 스팀파워를 가진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주제를 토대로 쓴 글만이 보상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판자들의 주장에 따라 스팀파워의 영향력을 악하다고 가정하자. 하지만 거기에는 어떠한 대안도 없다. 스팀파워 대신 추천수에 정비례하는 보상을 제공한다면 부계정에 의해 초토화 될 것이고, 조회수에 정비례하는 보상을 제공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스팀파워를 많이 가진 계정에 대한 패널티는 다중계정으로 쉽게 우회할 수 있다. 한 사람에 대한 연속적인 보팅의 효율 감소 등 세부적인 규칙들은 안 그래도 높은 스팀잇의 진입장벽을 더 높일 것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기도 한다. A씨가 B씨의 창작물에 합당한 보상을 하고 싶어서 스팀을 구매해서 스팀파워를 확보했는데 한번씩 보팅을 건너뛰라는게 얼마나 우스운 이야기일까? 그래서 스팀파워가 악이라면, 대안이 없는 필요악이다.
나는 비판자들이 지목하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시간이 해결할 것이라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도 변화 없을 것이라는 비판자들의 주장과 다르게 나는 많은 변화를 보고 있다. 작년에는 조회수 0에 높은 보상을 받는 글들이 많았다. 스팀보터라는 자동보팅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글이었는데, 지금은 어떤가? 지금 스팀잇에서 많이 읽히는 글들은 많이 읽혀서 높은 보상을 얻은게 아니라, 높은 보상을 얻는 글이기에 많이 읽힌다는 지적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고도 높은 보상을 받고, 높은 보상을 받음에도 아무도 읽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그리고 그 다음은 어떨까?
마지막으로 다시 현실의 이야기를 해보자. 현실에서는 보상을 제공할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아부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가? 투자자, 영화사의 취향에 따라 영화는 난도질 당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유통사, 제작사, 투자자들에 의해 소비자들에게 모습을 내비칠 수도 없는 환경보다는 많은 보상을 받지는 못 하더라도 소비자들에게 모습이라도 내비칠 수 있는 환경이 긍정적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