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호기롭게 성인 발레 클래스에 도전했다가 세 번만에 끝나버린 중년 아줌마의 슬픈 사연을 담고 있습니다. 다음 편이 마지막입니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발레 강좌를 들으면서 내가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바로 발레는 춤이라는 거다! 처음에는 바(barre)를 붙잡고서 기본이 되는 자세를 연습하고 다리와 팔의 스트레칭을 하지만, 그 다음에는 본격적으로 넓은 교실에서 춤을 추었다!
그.. 그랬구나. 발레도 춤이었구나..
단지 나의 유연성 부족만 걱정하면 되는 줄 알았던 나는 그제서야 내가 몸치였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기본적인 동작들을 하나하나 알려주시고, 곧이어 그걸 음악에 맞춰 연결해서 춤추게 하셨다. 동작 하나하나는 어찌어찌 따라하겠는데, 그걸 연결하는 순간 내 몸은 이미 내 몸이 아니었다. 다음 순서도 기억이 안 나고, 왼 발을 뻗었는지, 오른 무릎은 구부렸는지, 팔은 위인지 옆인지... 맨 처음과 마지막 회전은 확실히 따라할 수 있었지만 그 중간은 마치 길거리에 선전하는 풍선 인형처럼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중간을 대충 얼버무리다가 마지막 회전만 박자에 맞춰 짠 하고 멈춰섰다. 흐흐흐. 헛웃음이 났다.
내 표정을 보시더니 선생님이 "그 심정 저도 알아요. I know how you feel." 하면서 예의 그 빠른 말투로 자기도 다른 사람이 짜준 안무는 순서 외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며, 하지만 내년 5월 쯤에는 완벽히 다 할 수 있을 거고, 다리도 다 쫙 찢어질 거고, 블라블라~ 말을 쏟아내셨다.
내년 5월? 지금 당장 이 수업이 끝나기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내년 5월? 전혀 위안은 안 됐지만, 억지 미소를 지으며 동작을 반복했다.
쁠리에, 허우적 풍선 인형, 마지막 회전하고 정면 주시.
쁠리에, 허우적 풍선 인형, 마지막 회전하고 정면 주시.
당신이 발레를 해야 하는 이유
내가 어렸을 때도 하지 않았던 발레를 이 나이에 배워볼까 했던 건 단지 우아한 발레리나들의 모습에 혹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인정한다. 그 이유가 크긴 했다...) 인터넷에서 성인 발레에 대해 검색했을 때 온갖 좋은 얘기들이 많이 써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인터넷에서 성인 발레(adult ballet)를 검색해본 이유는 혹시라도 민망하게 발레복을 입어야 하는지 설렜기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많은 분들의 우려와 걱정, 그리고 기대와는 달리 성인 발레 클래스는 대개 그냥 운동복(요가나 러닝을 위한 운동복)을 입고 한다.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가 다니는 짐은 그랬다.
아무튼 인터넷에는 성인이 되어도 발레를 배워야 한다(6 Things Why You Should Take a Ballet Class)는 기사나 블로그 글들이 많았는데, 이들이 발레를 극찬하는 이유는 크게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됐다. 똑바른 자세 그리고 우아함.
인터넷에서는 하나같이 현대인의 구부정한 자세를 교정하는 데에 발레만한 게 없다고 칭찬을 했다. 꼿꼿하게 서있는 발레리나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수긍이 갔다. 오랜 시간 컴퓨터를 바라보느라 내 평소 자세도 그리 좋지 못하다. 심한 거북목까지는 아니지만 어깨가 앞으로 숙여져있다.
그리고 오드리 헵번도 발레를 좋아해서 평소 발레로 스트레칭을 했다고 한다. 우아함의 대명사 오드리 헵번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오드리 헵번과 나와의 공통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뭐라도 공통점을 하나 만들고 싶었다.
...
어쩌면 시작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르겠다.
자세, 자세, 자세! 자세가 중요하다
그럼 내가 따라하고 싶었던 그 "우아한 자세"란 무엇이냐?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바로 아래에 있는 사진.
내가 생각한 우아한 발레리나의 이미지. 이렇게 우아한 자세를 갖고 싶었다.
사실 저렇게까지 까치발 딛고 있는 건 힘드니 까치발은 빼고 생각하자. 한 다리를 들고 균형을 잡는 것도 힘드니 그것도 빼고 생각하자. 팔을 옆으로 들고 있는 것도 힘드니...
흠흠. 아무튼 뭔가 목이 좀 길고, 허리는 곧으며 가슴은 쫙 편 우아한 자세를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자세란 것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니었다.
머리는 누가 위에서 잡아당기는 느낌으로 세워주고, 어깨는 아래로 눌러주어 최대한 목이 길어 보이게 한다. 허리는 똑바로 하고, 어깻죽지 뒤의 양쪽 견갑골(shoulder blade)이 서로 반갑게 인사할 정도로 가슴을 쫙 편다. 갈비뼈는 안으로 조이고(읭? 갈비뼈를?), 팔은 힘을 주지 말고 우아하게 뻗는다. 복근에 힘을 주어 코어에 중심을 잡고, (서있는 포즈일 경우) 허벅지에 힘을 주어 두 다리를 붙인다.
그냥 서 있는 자세에서도 저 많은 사항을 다 지키며 서 있어야 했던 것. 역시 아무나 발레리나가 되는 게 아니었다.
위에 두 사진들 출처: 여기
우아하게 떠있는 백조가 물 밑에서 열심히 발버둥을 치듯, 우아한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선 서있는 자세 하나도 허투로 할 수 없는 거였다. 저 모든 걸 지키며 서 있자니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힘이 들었다. 어찌어찌 서 있는 자세를 비스므리하게 갖췄다 해도 발이나 손을 움직이기만 하면 그새 모든 걸 까먹고 허물어졌다.
역시 발레는 너무 무리였을까?
다음 마지막 편도 기대해주세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