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 듣는 요가
내가 듣는 요가 클래스는 인기가 많아서 한 교실에 스무명이 넘게 있다. 조금이라도 늦게 가면 매트를 깔 자리도 마땅치 않을 정도다. 사람들 눈에 띄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나는 주로 적당히 외진 곳에 자리를 잡는데, 내 못난 포즈가 주변에 있는 사람들 속에 묻히는 것 같아서 좋다.
이 수업에서 딱 하나 안 좋은 점은 선생님의 시범을 제대로 살펴보기가 힘들다는 거다. 원래 요가라는 게 고개를 숙였다가, 뒤를 봤다가, 몸통을 돌렸다가 하기 때문에 선생님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기는 힘들다. 그래서 선생님의 지시사항을 귀로 들어야 한다. 다리는 어떻게 펴고, 팔은 어느쪽으로 돌려야 하는지.
그런데 귀로 듣는 요가, 이게 참 곤혹스럽다. 한참 요가 자세를 휙휙 바꿀 때는 선생님의 말씀이 잘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여기는 미국. 자세들을 영어로 설명하는 걸 듣고 있으면 무척이나 헷갈린다. 다 아는 left와 right인데, 설명을 듣다 보면 머리 속에서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다.
"왼쪽 팔꿈치를 오른쪽 무릎의 바깥쪽에 대라고? 무릎을 밀면서 몸을 왼쪽으로 돌리라고? 아니, 근데 왜 다들 나랑 반대를 보고 있지? 아, 오른쪽으로 돌리는 건가?"
힘겹게 자세를 취했는데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으면(그 말인즉슨, 나 혼자만 다른 사람들과 방향이 다르면) 참 민망하다. 자세의 우리말 이름과 영어 이름이 다른 것도 한 몫한다. 물론 '나무 자세(tree pose)'나 '낙타 자세(camel pose)'처럼 이름을 그대로 번역한 것도 많지만, '개 기지개 켜는 자세(downward facing dog)'처럼 약간 변형된 이름도 있고, 'happy baby'처럼 미국에 와서 처음 들은 이름도 있다. 거기에 선생님이 수시로 섞어서 쓰시는 산스크리트어 이름까지 더해지면 귀로만 듣고 따라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니-루 노우즈"가 뭐냐고?
'개 기지개 켜는 자세'라는 게 있다. 영어로는 downward facing dog(혹은 그냥 down dog라고 하기도 한다.)라고 하는데, 양손과 발을 바닥에 댄 채 엉덩이는 하늘을 향하게 한다. 설명만 들으니까 이게 어떤 자세인지 잘 모르실 거다. 내가 뭐랬나. 귀로 듣는 요가가 쉽지 않다니까.
이게 바로 '개 기지개 켜는 자세'다. 발 뒤꿈치는 바닥에 붙이고, 겨드랑이를 바닥쪽으로 눌러준다.
우리 선생님은 downward facing dog를 그냥 "downward dog"라고만 부르신다. 사실 dog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이 이름이 '개 기지개 켜는 자세'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자세를 지속할 때 선생님이 "Push your elbows forward."라고 하신다. 팔꿈치를 앞으로 밀라니? 이 자세에서 어떻게 팔을 밀어? 팔을 들어 올리라는 뜻인가?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봤더니 상체를 좀 더 바닥으로 낮추라는 의미였다. 한국에서 요가를 배울 때는 "겨드랑이를 바닥쪽으로 낮추세요."라고 했었는데, 같은 얘기를 저렇게 하신 거였다.
한국에서의 개 기지개 켜는 자세는 여기에서 멈췄었는데, 미국에서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간다. 한쪽 다리를 높이 들어올리게 하는 거다.
바로 요렇게. 아, 사진만 봐도 얼굴에 피 쏠린다.
시뻘개진 얼굴로 팔 부들부들 떨면서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선생님의 목소리가 또 들려온다.
"니-루 노우즈!"
니루 노우즈라... 그래도 명색이 영어를 좀 가르쳐봤던 사람인데, 이 말을 못 알아듣진 않았다. 그냥 좀 당황했을 뿐이다. '니-'는 분명 knee 즉, '무릎'이다. '루'는 to를 말하는 걸 테고, '노우즈'는 nose 코다. 그렇다면 "니-루 노우즈"는 "무릎을 코에!"라는 뜻인데. 아니, 그러니까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알게 됐다. 아하. 저거였구나.
이게 바로 "니-루 노우즈!" 포즈. 아까 위에서처럼 다리를 하늘 높이 들고 있다가 그 다리를 굽혀서 무릎이 코에 닿게 바싹 끌어올리는 거다. 그랬다가 다시 하늘 높이 올리고, 또 내리고. 올리고 또 내리고. 아이고 배 땡겨.
사진들 출처: msn-down dog knee to nose pose
고개 빼고, 눈 돌려서
요가 시간에는 유난히 더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고개 빼고 눈 돌려서 선생님도 봤다가, 다른 사람들도 봤다가. 그래도 괜찮다. 어리바리하게 두리번거리다 보면 나 같은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곤 한다. 한두 명이 아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눈치로 가늠하고. 요가 시간은 숨돌릴 틈 없이 이어진다. 이렇게 휘몰아치다 보면 그 시간 동안에는 내가 없어진다. 한 시간 15분이 후딱 지나간다.
아무래도 나중에는 요가 자세들의 산스크리트어 이름도 공부해야겠다. 다행이다. 요가가 점점 재미있어져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