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신랑과 결혼하기 참 잘 했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그건 단연 시부모님들 때문이다. 우리 아버님과 어머님은 정이 아주 많으신 분들이다. 게다가 아버님은 아이들을 엄청 좋아하셔서 아이들을 정성들여 키워주시는 것도 모자라 매주 아이들이 올 때마다 진심으로 반가이 맞아주신다. 지금도 아이들 재운다고 불을 껐음에도 손녀와 놀아주시느라 하루의 피곤함도 잊으신 것 같다. 둘째의 웃음소리가 참으로 경쾌하게 들린다.
가끔 주위에서 시댁 식구들과의 갈등으로 인해 힘들어 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너무 한다 싶기도 하면서 나는 정말 결혼을 잘 했구나 싶다. 게다가 요즘은 시부모님과 마찰이나 갈등이 없어도 시부모님과 만나기를 꺼려하는 사람도 많단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손주가 너무 보고 싶은데 며느리 얼굴 보기가 하늘에 별따기라고 하소연 하신다. 손주 새끼 보고 싶어 며느리 생일을 핑계 삼아서 비싼 레스토랑까지 예약해 놓고는 오늘은 드디어 손주 보는 날이라 좋아하시며 서둘러 퇴근하시던 모습이 생각이 났다.
그것에 비하면 나는 매주 손주를 보여주는 것도 모자라 손주 셋을 아예 던져 드렸으니 그보다는 낫다 할 수 있을까. 지난주에는 친정에 갔다오느라 2주만에 시댁에 내려왔다. 정읍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아버님 가게에 들렀다. 마침 형님이 오셔서 아버님과 정답게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아버님은 우리를 보시더니 큰 웃음을 지으시며 우리를 반겨주신다.
다시 눈감으면 코닿을 데 있는 시댁으로 향하는 길에 신랑이 한마디 한다.
우리 아빠도 진짜 많이 변하신 것 같아. 나 어릴 땐 엄청 무서우셨거든. 집 밖에서는 사람 좋고 인기가 최고였었어. 내가 아빠를 보면서 제일 싫었던 것은 아빠가 사람들한테는 항상 웃으시며 멋진 사람으로 불리면서도 집에서 우리들한텐 무섭게 하셨던 것이 그렇게 싫었는데 아빠도 나이를 드시니 변하시나봐.
신랑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도 아빠 생각이 생각났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상의 대표 주자셨던 우리 아빠도 예외는 아니셨다. 밖에서 다른 사람들한테 아빠는 항상 사람 좋은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싫은 소리도 잘 못하시다 보니 사기도 잘 당하고 돈을 빌려줬다가 떼이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면서도 가족들한테는 항상 큰소리를 치셨고, 간혹 사고를 치시고 들어오셔도 엄마한테는 늘 당당한 모습만 보이셔서 그 모습이 참 싫었는데 아빠도 나이를 드시니 점점 어깨가 쳐지시고 자식들한테도 큰소리를 못 치셨던 것 같다.
그사이 가족관도 참 많이 변했다. 요즘 아빠들 가족들이라면 끔찍히 생각하는 것을 보면 시대에 따라 가족의 의미도 점점 변해가는 것을 느낀다. 우리 신랑만 봐도 밖에서도 빈틈없는 사람이 집에 와서는 아이들한테 한없이 바보가 되니 말이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크면 아이들에게 나와 남편은 어떤 부모로 기억될까?
남편의 생일이 되어 오늘도 형님네 아이들이랑 저녁을 먹으며 우리 첫째 학예회 때 찍은 동영상을 보며 옛날 이야기도 하면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인생 뭐 있냐 싶다. 많이 가지나 못 가지나 이렇게 가족끼리 모여 밥한끼하며 시간을 같이 보내면 그것만큼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도 없음에도 우리는 참 단순한 것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20년 후에도 온 가족이 다 함께 기쁜 마음으로 모여 앉아 저녁상을 마주하며 웃을 수 있도록 가족을 더 소중히 하고, 남도 중요하겠지만 우선 내 가족을 더 귀하게 대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