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업무가 너무 많아 어제는 새벽 다섯시가 넘어 퇴근했다가 잠깐 눈만 붙이고 아이들 밥해 주고 다시 출근을 했다. 그제는 새벽에 잠깐 나갔다가 아이들 아침 먹여서 등원시키려고 출퇴근에 필요한 왕복 30분을 추가로 길에서 소모해야만
했다. 내가 아이들 때문에 집에 올때쯤 남자동료들 몇몇이 출근을 한다.
피곤함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억울한 생각이 든다. 나는 왜 여자로 태어나서 이렇게 고생을 사서 하고 있을까? 적어도 남자들은 아이들 등원시킨다고 아침 출근했다가 다시 집에 오지 않아도 되고 나처럼 야밤에 아이들 재운 다음에 일과중에 못 다한 일을 하러 회사에 다시 들어갈 필요없이 마음 놓고 야근하면 되지 않은가.
예전에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마이클 샌들 교수의 하버드대 강의를 동영상으로 본 적이 있다. 사람은 어차피 동일한 출발선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금수저를 가지고 태어났고 누군가는 흙수저로 태어난다. 그 강의실에서 강의를 듣고 있던 학생들에게 샌들 교수가 첫째로 태어난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요구하자, 한 강의실의 거의 80%가 손을 들어서 인상적인 적이 있었다. 굳이 가정환경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동일한 가정의 몇번째 아이로 태어났느냐도 사람의 인생을 크게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큰자식에 갖는 기대와 지원이 둘째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으니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해서 들어봤는가? 한 쪽으로 편파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이 운동장에서 플레이어들은 동등한 환경에서 경기를 할 수가 없다. 누가보더라도 편파적인 경기가 진행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운동장에 선 플레이어들은 남성과 여성일수도 있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일 수도 있다. 애시당초 신체적이든 운명적이든 동일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으니 공평하다 할 수 없는 것이다.
한 쪽으로 치우쳐진 시소를 보고 당신은 약한 쪽에 있는 사람에계 소리칠 수 있다.
지금 한쪽이 엄청 불평등하네요. 그럼 이제 내가 시소의 중심에서 균형을 맞춰줄께요. 난 약자의 편이니까요.
하지만 우습게도 시소의 중심에 선 당신은 약자의 편이 되어 줄 수 없다. 둘의 힘이 균형을 이루고 기회의 평등이 주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면 당신은 시소의 약한 쪽에 가서 힘을 실어줘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끔 시소의 중심에 서서 약자를 이해하는 척한다.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워킹맘인 나를 위로하며 힘들겠다 라며 이해해 주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러나 혹여 내가 여자라서 출산을 이유로, 아이 양육을 이유로 휴직이나 출산을 신청하면 기다렸다는듯이 그래서 여자는 안된다며 여자직원의 입사를 반대하는 이유를 정당화하려고 하곤 했다.
동일한 출발선에서 동일한 조건에서 달리지 않음에도 동일한 잣대로 평가를 받아야 하는 워킹맘. 어차피 워킹맘으로 일하려면 그 정도는 감수하고 더 잠을 줄이고 더 노력해야지 마음을 다 잡기도 하지만 아주 가끔은 여자인 것이, 워킹맘으로 일한다는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죽어라 뛰는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조금 서글퍼지려 한다.
일하는 여성들이여..힘내보자. 언젠가 올 좋은 봄날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언젠가는 평평한 운동장에서 선전할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