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님, 어머님은 모임이 많으시다. 시민경찰로 봉사하는 봉사모임에 초등학교 동창 친목계, 매월 19일에 만나서 19계에 무슨 친목계만 수두룩이다. 모임마다 송별회가 있는 12월에는 주말마다 우리가 내려와도 저녁식사를 같이 하기가 힘들 정도니 말이다. 그렇게 두루두루 모임도 많이 하시며 발이 넓기로 유명하신 우리 아버님도 몇십년 절친은 한분 계신다. 집안끼리 어느정도 사는 정도도 비슷하고 누구네집 숟가락이 몇개인지 집안 내력도 다 알 정도이다.
몇십년을 친구로 지내다 보니 이제 눈빛과 얼굴만 봐도 저 사람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구나 알 수 있고, 또 어쩔땐 마누라나 자식놈들 보다 내 마음을 더 잘 이해해 준다. 자식하고 마시는 술 한잔보다 싸구려 안주라도 마음이 통하는 사람끼리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이면 술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으시단다. 두분은 서로에게 세상 모든 근심과 걱정을 다 이해받는 것 같아 그저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위로가 되는 그런 친구인 것이다.
부모님들이 친하게 지내시니 우리 자식들도 가끔 모여 부모님들과 조촐하게 식사를 같이하면 그 때만큼은 두분 모두 기분좋게 활짝 웃으시며 술잔을 거나게 부딪치신다. 든든한 자식 새끼들 끼고 기분좋게 술 한잔 드시는데 이때 만큼은 세상무엇이 더 부러울까 싶으신 듯 하다. 그럴 때면 자식들도 아무리 사소한 얘기에도 웃게 되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두분의 몇십년 우정도 가끔은 서로에게 마음을 써야 할 때가 있으니 그건 명절 때이다. 먹고 사는것이 포도청이다
보니 명절에 가끔씩 고향에 내려오는 것을 건너 뛰더니 이번에도 아들 둘은 내려오지 않았단다. 요즘은 더욱 자신의 여가와 편한 것을 선호하다보니 나흘의 설 연휴가 너무 짧다는 이유로 고향을 찾지 않은 사람도 많으리라. 굳이 멀리 찾지 않아도 우리 아가씨가 그렇고 내가 그렇다. 나는 애 셋을 데리고 연휴 고속도로 정체를 뚫고 가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명절 전후로 친정엘 다녀오니 우리 엄마는 이제 당연히 못오겠지 싶으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허전하실것이 분명하다.
오늘은 아버님의 절친이신 친구분 댁에 인사를 드리기 위해 잠시 들렀다. 자식이라봤자 꼴랑 둘밖에 없는데 자식들이 올 명절은 짧아 못내려온다고 하니 두 내외는 음식 하나 장만하지 않고 썰렁한 명절을 보내고 계셨던 것이다. 오늘따라 유난히 두 노부부의 모습이 더 쓸쓸해 보였던 건 명절 기분탓일까?
온가족이 한달에 한번 만나도 12번밖에는 못 만나는데 일을 이유로, 학교를 이유로 떨어져 살면서 일년에 만날 수 있는 날은 고작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날밖에 없으리라.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 쉬운 이유를 대며 부모 살아 계실 때 얼굴 한번을 제대로 비춰드리기가 힘드니 부모 죽어 재삿날 얼굴 비춰 드리면 무슨 소용일까 싶다.
요즘 나이를 먹으니 자꾸 이렇게 바쁘게 사는 것이, 이렇게 여유없이 사는 것이 맞는 것인가 하는 회한 섞인 물음을 내 자신에게 던지게 된다. 부모 살아 계실 때 손주 녀석들 얼굴이라도 실컷 보실 수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게 하는 명절이다.
부모라는 이름과 기다림은 왠지 모르게 닮아있다.
부모이기에 자식을 한없이 기다려 줄 수 있는 것.
내 부모가 나를 기다렸듯이 나도 언젠가는 내 아이들을 목빠지게 기달릴 날이 오겠지.. 지금 울 엄마가 느끼는 그 감정을 내가 느낄 날이 온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서글퍼진다.
*이미지 출처 : 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