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마흔하나. 십대를 지나, 이십대를 넘어 삼십대가 쏜살 같이 지나가 버렸고 이제 벌써 사십대다. 사실 나이 먹는 것을 인식하고 살기에는 너무 바빠 내가 한살 두살 나이를 먹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이렇게 철이 안들어 아직도 이팔 청춘 철부지처럼 사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도 나이를 먹고 있다는 것을, 조금씩 늙어간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는데 바로 누군가를 떠나 보내게 되는 횟수가 늘어감을 느낄 때 그 때이다. 지인은 물론이거니와 이제 조금씩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가족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때가 오는 것이다. 물론 올 때는 순서가 있지만 갈 때에는 순서가 없다는 말도 있지만 말이다.
지난주 집에 오기전에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계신 시할머니의 병실에 들렀다. 불과 한달 전만 해도 일요일 저녁이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우리 첫째와 둘째에게 무엇이 그리 아쉬우셨는지 아이들 면전에 대고
다섯밤만 자고 또 오너라.
를 꼭 말씀하시고 하던 건겅하셨던 할머니는 갑자기 곡기를 조금씩 멀리하시더니 결국 중환자실까지 가신 것이다.
간신히 영양제로 연명하셨으니 할머니의 몸은 뼈만 남아 앙상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했다. 누워만 있어서 몸 이곳저곳이 아픈 듯 몸을 조금씩 움직이실때마다 고통스러운 표정이 뼈만 남아 앙상하게 남은 얼굴 전체에 묻어났다. 그래서 나는 연명이라는 단어가 주는 그 인위적인 느낌이 참 싫다.
얼마나 힘이 드실까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피가 온몸 전체에 전달되지 못해 발가락 끝은 이미 검붉게 괴사 상태가 되어가는 모습을 나는 보았다. 할머니의 몸 이곳저곳을 주무르며 이미 할머니의 죽음을 예견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 순간 만큼은 왜 나이드신 어르신들이 잠자는 것처럼 편하게 아프지말고 그렇게 갔으면 좋겠다 하시는지를 절절히 공감할 수가 있었다. 힘들어하시는 모습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진심으로 빌어 드리는 것 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할머니..이제 그만 힘들어하시고 편히 가세요. 이제 그만 아프셨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차마 그 말을 입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그리고 할머니한테 말했다.
할머니.. 다음주에 또 올게요.
그리고 약속한 날이 얼마지 않은 어제 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순간 할머니와 마주했던 마지막 그 순간이 고스란히 기억이 났다.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왕할머니가 계셨다.
이제는 정말 과거형이 되어버렸다. '계시다'와 몇획 차이도 안나는 말인데 이제 다시는 살아서 볼 수가 없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 되어 버린 과거형의 '계셨다..' 이 말이 참으로 서글프고 아픈 말임을 나는 지금 깨닫는다. 산다는 것은 또 누군가와의 이별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임을.
살아 생전 할머니 좋아하시던 것도 잘 사다 드렸는데, 오늘은 마지막 가시는 길에 그렇게 좋아하셨던 증손주 녀석들 얼굴 한번 못보여 드렸던 것이 그렇게 마음에 걸릴 수가 없는 그런 날이다.
할머니...이제는 아프지 마시고 편히 쉬세요.
2018.4.12. 왕할머니 떠나신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