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박세계입니다.

모처럼 살짝 경험담을 섞은 글을 올리고자 합니다.
요즘 스팀잇이 거의 제 인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에 자연스레 이곳에서 보고 겪는 일들이 머릿속에 지속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가끔씩 '험한 말'을 보게 되는데 이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경험담과 함께 풀어보고자 합니다.
'험한 말'의 몇가지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 주로 젊은 (혹은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혈기에서 오는 '쿨병' 걸린 험한 말
- KR 커뮤니티의 여러가지 논쟁들에 진저리치며 떠나기 직전 뱉어내는 '쿨병' 걸린 험한 말
- 특정 논쟁이 커지며 야기되는 괜한 험한 말 (당사자들은 매우 정당하다 생각할지라도 제3자가 볼때는 여전히 불필요하며, 본인조차 언젠가는 이불킥을 할 확률이 다분한 험한 말)
'쿨병'의 개인적인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본인은 굉장히 쿨하며 멋있고 정의롭다고 생각하나 정작 다른 사람은 아주 볼품없고 꼴사납다고 생각하는 말이나 행위를 뱉어내는 병. 나이가 들수록 고쳐지기 쉽지 않은 불치병에 해당. 실제로 정의로운 말이나 행위와는 누가봐도 구분되기 쉬움. 물론 본인은 잘 모름.
잠시 경험담이 이어지겠습니다.
아일랜드 직장에서 몇 년간 일을 했었습니다. 해외 경험이 있으신 분은 아시겠지만, 해외는 어디서든 한인 교회가 교회이자 한인 커뮤니티의 중심입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당연히 거기서도 교회를 열심히 다녔고 집사 직분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집사: 주로 30세 이상 기혼자로 교회에 비교적 오래 꾸준히 성실히 다닌 사람에게 더 열심히 하고 모범이 되라는 의미에서 주는 직분 중 하나. 직분을 받을 때 보통 예배 순서 중간에 앞에 나가 공식적으로 임명을 받게 됨.
절대 다수였던 유학생들보다 상대적으로 오래 지냈고 교회에서도 활동을 많이 할 수 밖에 없었던터라 규모가 엄청나지 않았던 아일랜드에서 많이 알려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한인 모임을 가도 '거의 반드시' 누군가는 이미 저를 알거나 저를 아는 지인을 아는 상황이었습니다. 자연스레 몸가짐을 극도로 조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냥 '나 저 사람 알아'가 아니라, '나 저 집사님 알아'의 상황이었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그렇게 8년간 생활하며 '평소에도 비교적 몸가짐을 바르게'의 습관을 가지게 된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특별히 인격적인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다른 옵션이 아예 없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 돌이켜봐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찰나의 순간이 있습니다.
지금은 한국에서 같이 지내고 있지만 당시에 아내와 딸아이를 한국에 놔둔채 혼자 아일랜드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요리실력도 형편없다보니 먹는게 상당히 부실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인 커뮤니티에는 'XXX 먹을거를 팝니다'의 글이 종종 있었습니다. 물론 엄격하게 법적으로 보면 1:1로 먹을것을 팔고사는건 문제가 되는게 맞으나 이에 대해서는 굳이 논하지 않겠습니다.
누군가 '김밥을 만들어서 팝니다'라는 글을 올렸는데, 반가운 마음에 일단 핸드폰에 번호를 저장해 놓은 후 까맣게 잊고 지냈습니다.
당시 100-150명 정도가 그 한인 교회를 다녔었는데 예배를 마치면 식사/다과/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다시 얘기하지만 거의 대부분 저를 아주 잘 알거나 대충이라도 알고 있으며, 인원이 적지는 않은 관계로 저는 전혀 모르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 중 '누군가'와 갑자기 벌어졌던 대화입니다.
- 누군가: 어쩌구 저쩌구.... 집사님 어쩌구.... 저 김밥 팔고 있는데 ... 또 어쩌구...
- 나: 오오! 저 그 글 XXX 사이트에서 봤어요! 저도 그 김밥 너무너무 먹고 싶은데 연락처좀 받을 수 있을까요? 대박 ㅋㅋㅋ
- 누군가: 네 당연하죠 집사님 ^^ 제 번호는요 000-0000-0000.
- 나: 네 잠시만요 ㅋㅋ (둘이 같이 사이좋게 내 핸드폰 화면을 보며) 000...0000...0000.......... (침묵)
진짜 0.000001초 찰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게 느껴졌습니다. 무협지에서 보면 흔히들 말도 안되는 찰나의 순간동안 별의별 생각을 다하며 수 십가지 초식을 선보이는데, 그게 마냥 거짓말은 아닐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미 번호가 저장되어 있었기 때문인데, 당연히 그 상황 자체를 까맣게 잊었던 터라 무슨 이름으로 저장한지 전혀 감이 안왔기 때문입니다. 0.000001초 찰나의 머릿속 현장입니다.
번호가 저장이 돼있어? 왜? 언제? 누가? 뭐여? 이런 젠장! 가만보자... 왜 이 사람은 하필 지금 내 핸드폰 화면을 같이 보고 있는겨! 암튼 그건 그렇고... 이왕 이렇게 된거 뭔 이름으로 저장한겨? 설마 '김밥X' 같이 쌍스러운 이름? 나 몇 년동안 거룩한 척 지냈는데, 이렇게 한방에? 그것도 하필 교회 안에서? 오오... 침착해 넌 할 수 있어... 아직도 희망은 있어...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 이름을 나 혼자서 예의 바르게 저장할리가 있나? 당연히 없지... 무슨 헛소리를! 넌 끝났어. 후후... 그동안 즐거웠다 내 인생... 이제 안녕... 아디오스!
(출처: MBC 베스트극장 587화 '형님이 돌아왔다')
0.000001초의 영원같은 시간이 흐르고 정확히 0.000002초가 되는 그 순간 전 봤습니다.
김밥파는 분
놀랍게도 과거의 제가 그 당시 저를 아디오스!의 상황에서 구해주었던 것입니다. 네, 맞습니다. 이미 그 당시 저 자신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예의범절이 뼛속 깊이 몸에 밴 상태였기 때문에, 아무도 보지 않았던 혼자만의 '핸드폰에 모르는 사람 이름 저장' 순간에 극 존칭인 '분'이라는 표현을 자연스레 사용했던 것입니다. 후후.
- 나: 오오! 이미 저장이 돼있네요. 이런 우연이. 저도 모르게 상당히 공손하게 저장을 했었군요. 김밥이 너무 먹고 싶었나봐요. 하하하! (고맙다 과거의 나. 이 은혜 절대 잊지 않으마.)
- 누군가: 그러게요 집사님. 호호호! (이놈은 뭔 오바여 잠바여. 그래도 기분이 썩 나쁘진 않군. 씨익~)

(출처: 네이버 이말년씨리즈)
물론 당시 했던건 말조심이 아니라 손가락조심 이었습니다. 하지만, 둘은 연관이 깊으며 결국 진짜 쓰고자 했던 글의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 항상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하는 진짜 이유
짧은 경험담에서 '대체 왜?'를 충분히 표현했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우리가 평소에도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하는 이유는 블록체인의 영원성이고 뭐고 때문이 아닙니다. 사람의 인격은 경향성을 가지며 이는 관성으로 인한 가속도를 함께 지닙니다. 경향성은 당장 남들이 보는 앞에서 아닌척 한다고 별의별 노력을 해봐도 아주 쉽게 드러나는데, 관성 가속도 덕분에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을수록 바꾸기는 더 힘들어집니다.
좋지 않은 말/손가락/몸가짐이 피해를 주는건 내 눈앞에 있는 남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 입니다. 남은 생각보다 나에게 커다란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나는 남에게 그냥 남일 뿐입니다.
자신을 사랑한다면 미래의 자신을 위해 현재의 몸가짐을 늘 살피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오호~ XXX 넘. 이 글 읽고 진짜 뜨끔 했을거다. 아 시원해 사이다! ㅋㅋ' 이런 마음은 절대 금물입니다. 이 글이 필요한 대상은 아마도 글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 자신일 것입니다. 저 역시 이 글을 끝까지 읽은 독자 중 하나임을 밝힙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