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대단한 꽝손이다.
실력발휘를 잘 하던 당구도, 내기가 걸리면 갑자기 좋은 공이 안오고 말도안되는 실수를 한다. 사소한 이벤트 추첨도 1등은 고사하고 2등도 3등도 잘 안걸린다. 멀쩡하던 주식도 내가 사면 떨어진다.
"그런 내가 스팀을 샀다."
금융거래를 잘 안하기에, 그 흔한 은행 휴대폰 앱도 하나 없어서 돈을 송금하려면 꼭 집에 있는 컴퓨터를 써야 하는 내가 암호화폐를 샀다.
왜 고팍스(Gopax)를 선택했는지 모르겠는데, 뭔가 체질적으로 제일 잘나가는 사람보다는 2등이나 3등을 응원하는 편인 나라서, 스팀 거래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고팍스를 응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님의 매우 자세한 소개글로 인해 비교적 수월하게 별다른 사고(?) 없이 무사히 계좌등록까지를 마치고 첫 거래에 성공했다.
그렇게 스팀을 구입하고 사흘이 지나 내 스팀잇 계좌로 입금이 되었고, 스팀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보팅 게이지'라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이리 간사한 것이었던가. 송금을 기다리는 72시간동안, 그전에는 관심도 별로 없어 잘 들여다 보지않던 거래소 그래프를 몇번을 들여다 봤는지 모른다. 막상 사고 얼마간 오르자 파워업을 하겠다고 다짐했던 마음이 슬그머니 '일단 팔아서 한 10%라도 벌까?'로 바뀌기도 하고, 가격이 내리기 시작하자 '거봐 역시 꽝손이지' 라는 한탄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초보중의 초보이자 꽝손중에 꽝손인 내가 왜 스팀을 샀을까.
엄청나게 여윳돈이 많다면, 한번에 돌고래나 범고래가 될 수 있을 테니, 시도해볼만 하다지만, 기껏해야 플랑크톤을 면할 만큼 밖에 안될 파워업인데, 뭔가 의미있는 일에 쓰겠다고 잘 모아두었던 쌈짓돈을 털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일지 확신도 없는데 말이다.
여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스팀잇을 처음 시작했을때, 스팀잇이 창작을 지원하고 그로 인해 돈을 버는 새로운 형태의 SNS와 암호화폐의 콜라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열심히 글쓰고 잘 소통하면 작은 성공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더우기 글쓰는 사람으로 사는데 매력이 있었기에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창구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정의도 여전히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두달간 스팀잇에서 생활하면서 깨닫게 된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창작자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다 아시는 이야기 이지만, 채굴을 하는 증인분들과 거기서 배분되는 스팀(정확히는 베스트겠지만)이 스팀잇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배분이 된다. 물론 배분은 상호 보팅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그 보팅은 스팀을 얼마나 파워로 보유하고 있는가에 따라 무게 즉 금액이 달라진다.
그래서 혹자들은 많은 파워를 가진 고래분들이 대세를 좌지 우지 하며 많은 돈을 벌고 실제 창작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낮은 보상이 주어지는 돈놀음이 아니냐고 이야기들을 하신다. 어떤부분에서는 틀린말이 역시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가지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암호화폐가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그 암호화폐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의 투자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스팀이 암호 화폐로서도 나아가 사이버머니 형태의 통화로서의 가치도 결국 사용자의 가치에 대한 믿음이 만드는 것이다.
현재 많은 스팀파워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가치에 대해서 투자를 한 사람들이고, 그 투자에 대한 보상이 더 큰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초기에 적은 투자로 들어와서 운좋게 그렇게 된것이 아닌가 하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생각해 보면 초기에 더 큰 위험을 안고 들어왔던 것이니, 위험 감수에 대한 큰 보상도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스팀잇에서 내가 재미있게 지내는 만큼, 이 스팀이라는 암호화폐와 스팀잇이라는 시스템에 대한 나의 믿음을 조금쯤 증명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믿음의 표현은 여전히 '꾸준함'과 '양질의 컨텐츠' 일 수도 있지만, 스팀으로 사람들을 좀 더 끌어들이고 믿음을 줄 수있을 정도의 양질의 컨텐츠를 생산하기에는 아직 실력이 부족한 나로서는 보완할 방법이 있어야 했고, 그것이 스팀파워를 높이는 일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나는 이것을 '종잣돈' 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저 스팀에서 내가 좀더 재미있게 활동하고, 이런 스팀잇이 좀 더 오래 발전하는 형태로 있어줬으면 좋겠다고 하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의 작은 응원이라고 하는 편이 오히려 더 맞을 것이다. 많건 적건 내가 스팀으로 부터 받은 것이 있으니 조금 쯤은 기여를 하고 싶다는 의사 표시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서 나는 조금 더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기를 바라고, 내가 좋아하는 스팀이 좀 더 발전하고 잘 유지되어가기를 바란다.
두번째 이유는,
스팀잇을 하면서 참 좋은 이웃들을 많이 만났다. 정말 좋은 글을 쓰는 작가분들도 만났고,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는 자유로운 영혼도 만났고, 창작자로서 훌륭한 금손도 만났고, 스팀을 지탱하며 노력하시는 고래분들도 만났다. 스팀잇 이전에 커뮤니티 눈팅정도나 하던 사람이었기에, 이런 이웃분들과 소통하는 것이 생경하면서도 색다른 세계를 보여주었다.
아무것도 없이 유입되어 들어온 내게 이 이웃분들은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응원해주고, 보팅해주어서 자리잡을 수 있게 도와주셨다. 그런 분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가능한 쓰신 글들을 꼼꼼히 읽고, 성의껏 댓글을 다는 것 밖에 없었다. 보팅을 하기는 하지만, 초기엔 0.00$ 이었고, 그나마 최근에는 0.01$이 되어서, 사실상 별다른 도움이 안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는 글을 읽는 것이 즐겁고, 댓글을 달아 소통하는 것이 즐겁다. 이 즐거움에 조금 더 나은 보상을 내가 줄 수 있다면, 더 많이 즐거워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약하지만, 파워업을 통해서 이것을 이루어 보고 싶었다.
누군가 내가 잘 쓴글의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아 속상해 하기만 하는 것 보다는, 내가 좋은 글을 찾아서 기운을 북돋아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렇게 아쉽게 묻히는 글을 읽고 발굴하는 것이 내 스스로도 즐겁기 때문임은 물론이고, 이러한 노력들이 모여서 좋은 글이 인정받고 보상받는 그런 스팀잇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또, 더 나아가서 투자 선순환의 좋은 모델이 되어 새로운 플랫폼으로서 스팀잇이 확고히 자리를 잡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내가 시작하지 않으면서 누군가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이기적일 지도 모를 생각이다.
'이렇게 해서 되겠어' 라는 생각이어도 행동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그것이 대세가 될 수 있다.
최근에 나는 큐레이터로서의 나의 가능성을 조금씩 발견해 가고 있다. 글쓰는 것이 여전히 즐거워서 멈추지 않을 것이지만, 좋은 글을 읽고 발굴하는 것이 무척 즐겁다. 더불어 그 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이 또한 도전할 수 있을 가능성이라고 믿는다.
나의 '꽝손'의 영향으로 스팀 가격이 영 맥을 못 추고 있다. 덩달아 스팀잇도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그래도 괜찮다.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시는 고래분들이 건재하고, 좋은 글을 쓰고 이웃과 소통하는 많은 스티미언들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분명 다시 돌아온다. 활기차고 즐거운 소통의 장으로 또, 창작자가 보상받는 그런 스팀잇이 될 것이다.
다만, 최근 몇가지 논란이 되고 있는 어뷰저들과 펀딩,보팅 봇들에 대한 문제는 바람직하게 노력하고 투자하는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갖고 바로잡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고, 네드와 증인분들도 이런 부분에 관심을 좀 기울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내년 여름에도 내가 글쓰기의 즐거움과 큐레이션의 즐거움에 대해 글을 쓸 수 있도록 말이다.
F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