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실패하지 말았어야 할 중요한 협상에서 크게 데인 적이 있어, 요즘 협상과 관련된 책을 많이 읽고 있습니다.
영화 <비열한 거리>에는 다음과 같은 명언이 나옵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두 가지만 알면 돼. 너가 원하는 것을 누가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에게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파악하고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전부라면, 어떻게 협상하는지를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겠지요.
지난 주에는 와튼 스쿨에서 강의되고 있는 스테디셀러인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를 읽었고 이번 주에는 트럼프의 <거래의 기술>을 읽었습니다.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도 좋은 책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거래의 기술>이 좀 더 훌륭한 것 같습니다. 전자가 협상의 기본기를 다룬 basic level이라면 거래의 기술은 상급자용(advanced)이 아닌가 생각되는군요.
이 책에 드러난 트럼프 인생철학을 중요 부분을 주관적으로 발췌하고, 이걸 베이스로 북미정상회담의 성과를 예측해보고자 합니다.
당신이 내게 거래란 무엇인가 물었으니 이제 이것에 대해 답할까 한다.
이것이 훌륭한 답변인지는 나 역시도 정확히 모른다.
사람들은 나를 도박꾼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일평생 도박을 한 적이 없다.
도박꾼들은 슬롯머신을 돌리지만 나는 내 슬롯머신을 보유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은 매우 훌륭한 비즈니스다.
사람들은 나를 긍정의 힘을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나는 부정적인 생각의 힘을 확고히 믿는 사람이다.
나는 거래할 때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
따라서 내게는 항상 다른 옵션이 있다.
최선의 계획이라고 할지라도 늘 다른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
삶이란 구조적으로 다양한 약점에 노출되어 있고 매우 취약하다.
성공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성공은 오히려 삶을 더 위태롭게 만든다.
아무 경고도 없이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그것이 내가 무슨 일이든 지나치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다.
인생이란 결국 그 과정에서 느끼는 흥분과 즐거움이 전부이다.
따라서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걱정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쏟지 않는다.
트럼프가 치매라고 진단한 의사는 인생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런 수준의 글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말년에 치매에 걸린 사례는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은 깨달은 사람입니다. 게다가 이 책은 1987년에 쓰여졌습니다. 지금은 무려 30년이 더 지났죠.
오래 산다고 꼭 더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원래 인생은 의미가 없습니다만 약한 사람들은 그 허무감을 견디지 못하고 억지로 의미를 찾으려고 하죠. 그래서 종교나 사상, 민족 같은 허울 껍데기를 뇌에 이식하고 거기에 맞게 니 편 내 편을 나누며 편하게 생각하곤 합니다. 직접 생각하면 머리도 아플 뿐더러, 다 부질없다는 결론 속에서 인생의 즐거움을 찾는 것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니까요. 트럼프는 인생은 의미가 아니라 재미를 찾는 게임이라는 그 부정할 수 없는 것는 진리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입니다. 이런 부류의 인간이 그 사이 얼마나 더 원숙해졌을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근데 딱 트럼프의 인생철학과 똑같이 사는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김정은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비슷합니다. 북한 일반 대중들이야(그리고 납득은 가지 않지만 일부 남쪽 사람들도), 김씨 일가를 신으로 받들지 모른다만, 과연 김씨 일가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선지자는 고향에서 대접받지 못한다는 말이 있죠. 예수와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보통 예수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옆에서 방구뀌고 똥 싸러 화장실 가고, 지나가는 예쁜 여자를 보며 음담패설을 하고, 이런 걸 보며 같이 자란 사람들이라면 아무래도 그 사람의 신성을 인정하기 어렵겠죠. 북한의 정치인들에게 김씨 일가란 그저 권력을 가진 한 인간들일 뿐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김정은은 그 노련한 정치가들 속에서 자기 권력을 확고히 잡아냈습니다. 트럼프가 말한 것처럼 사실 그건 대단한 일입니다.
왜 새파란 20대의 3남이 후계자가 되었는가, 분명 김정일은 김정은에게 다른 아들들과는 다른 싹수를 보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쩌면 궁전에서 왕자로 자라지 않고, 마이너한 동양인 남성으로서 서구 사회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언더독으로 자라왔던 것이 주효했을지도 모릅니다.
처음 그가 집권할 당시, 그는 몇 년 안에 남한을 적화통일하겠다고 호언장담했죠. 그리고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어보고자 데니스 로드먼을 초청했습니다. 그것은 돌연 한 국가의 주인이 된 젊은 청년의 패기였을 겁니다. 사실 야심 있는 청년이라면 그런 자리에 한 번 올라가보면 그런 용기를 한 번 부려보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합니다. 하지만 로드먼과의 농구 관람쇼는 해외 언론의 조롱만 받았고, 남한에 대한 군사도발은 실패했습니다(먼저 공격하고도 더 많은 피해를 입었고 확성기나 전단지 살포 같은 역풍만 받았죠). 김정은은 멍청하지 않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무언가를 배웠을 겁니다.
정말 강자들은 눈빛만 보아도 안다고 합니다. 지금 김정은은 30대 중반입니다. 김정은은 비단 북한과 미국의 국력 차의 문제를 떠나서, 자신의 역량이 트럼프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바로 경륜 때문에 말이죠. 그는 이번 북미정상회담에서 자신이 굽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이미 북한이 핵 보유국으로 인정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현실과 타협했을 겁니다.
지난 번 쓴 글에 예측한 것처럼 북미정상회담은 '외형 상'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끌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코스피 ETF는 겨우 수익 구간에 진입한 수준에 불과하지만, 1, 2달 정도 더 이를 보유한다는 방침은 바꾸지 않을 생각입니다.
아마 잠수함이나 구석진 벙커에 핵무기 몇 개 정도는 숨겨두지 않을까 생각되는군요. 스마트한 김정은은 아마 처음 핵개발을 했을 때부터 이걸 협상 카드로 써먹을 생각을 했을 것이고, 어디 숨겨놓을지를 그때부터 연구했을 겁니다. 그리고 조지 부시 같은 대통령이 집권하고 미국 국민들이 전쟁을 감수할만큼 호전적으로 상황이 변할 때를 대비하겠죠. 그것만으로도 카다피나 후세인 꼴이 나는 것을 면하기는 충분합니다. 악의 축 같은 극단적 발언이 나오지 않는 이상 더 이상의 핵무기나 탄도미사일 실험은 없을 것으로 예측합니다.
그리고 트럼프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건드리지 않을 겁니다. 어차피 미국을 겨눈 핵무기는 수십년전부터 수천개가 넘었는데 자기들을 건드리지 않으면 아예 세상에 등장하지도 않을, 미국 본토까지 닿을지조차 불분명한 핵무기까지 신경쓸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트럼프가 원하는, 북핵문제를 해결한 위대한 협상가라는 명예는 표면 상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하고 북한이 미국 주도의 국제 사회 질서를 존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리고 이건 그냥 뇌피셜입니다만 북한이 개방될 수도 있다고 생각되는군요. 국경을 열었던 공산권 국가의 집권층은 국민들의 역풍 속에 비참하게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김정은 같은 부류의 인간이라면, '나는 다르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은, 단순히 자기 결정의 결과를 즐기기 위해서라도 모험을 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습니다.
북한은 탈북자들이 다시 북한으로 입국하는 것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이 자체가 전과 달리 북한이 외부 사회의 노출에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미국 자본이 북한에 들어가고, 북한이 열리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합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김정은이 원하는 것은 그저 폐쇄된 국가의 독재자로서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다만 외국 유학 생활까지 했던 사람이, 심심하고 유행에서 뒤떨어진 나라에서, 자기에게 아첨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쌓인 그 생활을 얼마나 더 즐길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군요.
어쩌면 김정은이 바라는 삶은 김정일이 아니라 고르바초프일지도 모릅니다.
국제사회에서 유명인이 되어 이 국가 저 국가에서 초빙 받아 연단에도 서보고, NBA를 직관하며 관객들의 스포트라이트와 기립박수도 받아보고, 자신을 무시했지만 지금은 부러워할 옛 친구들을 만나서 자랑도 해보고, 어쩌면 그가 원하는 것이 이런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드는군요(혹 10년 뒤 은퇴한 트럼프와 만담쇼를 다니면 아마 공연 당 전석 매진일 겁니다). 벙커 안에 있는 것보다 인기인이 되는 것이 더 암살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추측성 시나리오에 불과합니다. 자기 안전에 많은 위협을 느낀다거나, 독재 국가의 지도자로서의 삶에 만족하며, 여전히 북한을 통제된 국가로 남겨두길 바랄 수도 있겠죠.
여하간 북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이 열리고 젊은 사람들에게 많은 기회가 생기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안보에 위협이 되는 닫힌 국가라는 그 존재감으로 인해 더 이상 북풍몰이의 대상도, 종북의 대상도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국의 정치도 북한이 빠진 보수와 북한이 빠진 진보로 재편되었으면 좋겠군요. 물론 비즈니스는 진보와 보수를 나누지 않고 꼭 넣어야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