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은 자신이 증오하던 것을 닮을까요?
위 사진들은 일본 공식 의전 행사에 참가한 일본의 미치코 왕후를 촬영한 것들입니다. 보다시피 미치코 왕후 혼자만 드레스 코드가 다릅니다. 이는 일본 왕실 여자들이 쓰던 고전적인 이지메 방식입니다. 일부러 드레스 코드를 가르쳐주지 않거나 틀리게 가르쳐주는 것이죠. 드레스 코드를 맞추지 못한 미치코 왕후는 혼자만 튀는 옷차림으로 행사에 참가했고, 일본 국민들로부터 예의가 없다는 비판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가뜩이나 평민 출신 왕후라 결혼 시점부터 잡음이 많았는데, 호사거리를 좋아하는 언론들이 미치코 왕후를 어떻게 보도했을지는 보나마나 뻔한 일입니다. 아주 수십년간 시어머니를 비롯한 왕실 여자들에게 혹독한 시집살이를 당했다고 하더군요. 유학파 출신으로 외국어에도 능통했던 자유로운 기질의 그녀가,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을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근데 재밌는 건, 이 미치코 왕후는 시어머니가 되어 자신과 똑같은 평민에다가 미국에서 자유분방하게 자란 마사코 왕세자비를 그렇게 괴롭혔다는 겁니다.
[할머니가 된 미치코 왕후]
[마사코 왕세자 빈, 표정에서 고뇌가 다 느껴집니다]
왜 사람들은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것을 닮을까요? 눈물겨운 시집살이를 겪던 젊던 미치코 황후의 생각은, "나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리라." 였을까요? 아니면 "나중에 나도 내 며느리한테 앙갚음해줘야지." 였을까요? 보통은 전자입니다. 처음부터 '가해자가 된 피해자'가 되길 바랬던 사람은 보통은 없을 겁니다.
고부 갈등만이 아닙니다. 텃세가 있고, 신입에게 필요 이상으로 군기를 잡는 직장에 입사하면,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면서도 자신이 그 위치가 되면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군대는 말할 것도 없고요. 가장 최악은 아동 성범죄자나 가정 폭력입니다. 그대로 대물림 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물론 분노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배출할 수 없는 분노를 쌓아두는 것은 매일 독약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독약을 마시면 아름답던 사람도 기이하게 변형이 됩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그 대상을 닮게 되죠. 부부가 닮는다지만 실제로 하루에 얼굴 맞대는 시간은 생각 외로 길지 않습니다. 매일 자기 시어머니나 직장 상사의 행동을 생각하며 화를 내고 그것을 복기한다는 것은 하루 종일 그 사람을 껴안고 사는 것을 뜻합니다. 당연히 닮게 되지 않을 리 없습니다.
더 최악인 것은, 자신을 납치한 테러범을 사랑하는 스톡홀롬 증후군마냥, 어느 순간 그 괴롭힘이 멈추고 스스로를 그 일원으로 받아들여주기 시작할 때, 이번에는 필요 이상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미워하던 대상이, 나중에는 피할 수 없는 대상으로,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를 해방시켜 준 대상이 됩니다. 실은 해방되기 전 그 고통을 제공했던 주체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누군가는 이런 방식으로 폭력적인 연인에게 정서적으로 종속되기도 하며(꼭 물리적 폭력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가스라이팅' 같은 것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겉으로 점잖은 채 하는 악질 병장의 행동대장을 자임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며, 보통은 이런 식으로 부정적 환경에 굴복하게 됩니다.
증오는 힘이 될 수 없다는 이 자명한 진리는, 꼭 집단에 노출된 개인에게 한정되지 않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 보면 억울한 일을 당한 주인공이 복수심을 품고 열심히 공부해 검사가 되는 사례가 꽤 보입니다만 신림동에서 제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이러한 감정이 오랜 고시 공부에 도움이 되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한 달, 두 달이면 모르겠지만 이 장기전에 있어서는 마음이 편하고 머리 속에 상념이 없어 온전히 법서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 보통 승자가 됩니다. 애인한테 차여서 기필코 붙겠다라는 마인드가 긍정적으로 작동하는 케이스는 거의 본 적이 없고, 참 불공평합니다만 보통은 고시촌 입성 전 연애를 많이 해봐서 별 관심이 없거나 이성에게 상시 어필할 만한 요소가 많기 때문에 연애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덜한 사람들이 성공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자극적인 감정, 증오 같은 것은 결코 힘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누군가 자신을 괴롭힐 때는 먼저 증오하지 않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미워하지 않아야, 그 행동의 근원에 있는 이유를 객관적으로 밝혀낼 수 있습니다. 의외로 상대방이 그렇게 악독한 행동을 하는 것은 그 사람 잘못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가끔 컴퓨터 게임을 하다 보면, 인격이 아닌 AI임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어를 지독하게 짜증나게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AI가 그렇게 설계되었기 때문에 그럴 뿐입니다. 반에서 누군가를 괴롭히는 어떤 친구는, 어린 시절의 왕따 경험이나 불우한 가정에 대한 분노로 인해 그런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연인에게 지나친 것을 요구하는 사람은 실은 과거의 아픈 연애 경험에서 비롯된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 날 때부터 싸이코 패스였다고 해도, 그렇게 태어난 것 역시도 그 사람 잘못은 아닙니다. 인간은 타고나거나 보고 배운대로 행동할 뿐이며 온전히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는 측면은 크지 않습니다. 즉 그 사람이 괴물이라고 해도, 그 사람을 괴물로 만든 사람은 본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증오에서 벗어나 상대방을 바로 보기 시작하면 이제 그 사람의 약점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일본의 만화책 <군계>에는 빨리 명성을 얻고 싶어 무례하게 챔피언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도전자가 나옵니다. 이 도전자는 부모를 살해하고 감옥에서 출소한 유명한 범죄자입니다. 챔피언이 결투를 거절하자 그 도전자는 챔피언의 여자 친구를 납치해서 겁탈한 후 겁박당하는 여자의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챔피언에게 보냅니다. 챔피언의 여자 친구는 연예인이라 언론에 가십거리가 될 이 사건을 섵불리 신고하기도 어렵습니다. 결국 복수심에 불탄 챔피언은 매치를 수락하게 됩니다.
하지만 정작 시합 당일, 현격한 체격 조건과 기량 차이에도 불구하고 도전자에 대한 증오심에 불타는 챔피언은 자기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 합니다. 하지만 링 위에서 챔피언은 도전자가 처한 가정환경과 그가 느꼈던 압박감을 이해하고 도전자의 형체를 정확히 파악해 냅니다.
결국 챔피언은 도전자를 완전히 KO 시켜버립니다. 이게 정답 아닐까요? 증오는 시야를 혼탁하게 덮으며 자기 페이스를 잃게 만듭니다. 외부에서 오는 부정적 감정이 자신의 안으로 스며들게 해서는 안 됩니다. 직장 상사에게 받은 스트레스는 직장 밖으로 들고 나와서는 안 되고, 만약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공간을 공유해야 한다면, 약점 파악은 약점 파악대로 하되, 그 부정적 상대에 대한 관심을 일체로 끊어 그 사람이 자기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만약 그걸 할 수 없다면 내부 부조리를 바깥에 폭로해서 관심 사병이 되거나 이혼이나 부모와 의절을 해서라도 물리적으로 공간을 벌려야 합니다. 차라리 그것이 그 사람을 증오하며 자신을 스스로 학대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러면 부정적 환경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뱀발 : 원래 이 글은 멀린님이 쓰신 복수에 대한 글 복수는 너의 것에서 영감을 얻어 쓰기 시작한 글인데, 글이 너무 길어져서 복수에 대한 주제는 다음 글에 다룰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