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by 파트릭 모디아노
"나는 평생 단 한편의 소설을 썼다, 단지 약간의 변주만 해 왔을 뿐"
201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Jean Patrick Modiano)는 평생 30여권의 소설을 써왔지만 그 작품들의 주제는 오직 '기억'과 그 기억속의 자아를 찾아 유영하는 인물들이 찾아가는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과거의 기억을 잃은 '나'는 존재하지 않는 현재의 나의 '존재했던' 나를 찾기 위해 과거를 향해 걷는다. 아무런 단서도 없이 시작된 나의 의문들이 스쳐 지나가는 듯 하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 의해 재구성 되어 또다른 질문들이 만들어지고, 명확한 지점이 없는 나의 여정에, 때로는 그들이 보여주는 어떤 한 곳에서 내 기억이 있어, 새로 만들어지거나 조작되기도 한다. 마침내 그것은 사실이 아님을 깨닫고 다시 그 지점에서 시작되는 나의 과거 찾기가 끝날것 같지 않을 듯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결국 모든 것이 초콜릿이나 비스킷을 담았던 낡은 상자들 속에서 끝이 나는 것이었다. 혹은 담배 상자 속에서."
내가 추적해서 따라간 단서들이란 모두가 작은 상자 속에 든 빛바랜 사진 들이며 그들을 추억하게 하는 작은 물건일 뿐이다. 과거를 살아왔다는 것은 분명한데, 그 기억이 없다는 것 뿐인데, 나의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이 과연 나에게는 얼마나 큰 의미가 될까?
"아무리 보아도 사람들은 벽으로 막힌 삶을 살고 있고 그들의 친구들은 서로 알지 못하는 모양이다. 유감스러운 일이다"
오래전 사진 한장을 들고 시작된 여정에서 나는 그 사진 속 사람을 알거나 나를 기억하거나 혹은 그 둘 모두이거나 혹은 둘 다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와 관계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참 희한한 일이다. Small world 라고 외치며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이 내 친구의 친구이거나 내가 싫어하는 상사의 가족일 때도 그러하지만, 이미 내가 여기 저기서 제법 근거있는 것들로 만들어 놓은 얼개가 서로서로 맞물리지 않고 삐그덕 거릴 때의 당혹감이란... 우리는 작은 세상에서 모든 이들과 관계하고 살아가는 듯 하지만, 이 작은 곳에서 엄청나게 복잡한 개인적인 관계 속에 살고 있기도 한 것이다.
결국에 내가 찾아낸 것은 나 자신과 내 친구들일지 모르지만, 우리가 읽으며 마주하게 되는 것은 '페드로'를 알고 있던 다른 모든 사람들과 그들이 관계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인생이었다.
이 소설은 정말 읽기 힘든 소설이다. 한가지 이야기를 가지고 이야기 진행에 따라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기억 속의 나를 두고 끊임없이 사변해 나가는 나의 행로를 지켜봐 줄 수 있는, 독자들의 인내가 필요한 소설이다. 짧은 소설임에도 적지 않은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이야기가 주인공인 나의 단서들과 얽히면서 끝없이 헝클어졌다가 마지막에 가서 정렬이 된다. 이야기는 각 장마다 모서리처럼 도드라져 있는 '사실'에 대한 기록과 섬광처럼 잠시잠깐 떠오르는 나의 기억이 맞물리면서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는 그 모든 빈 공간이 기억으로 채워지면서 마침내 자신을 찾아내는 과정이 지난하게 이어진다. 단언컨데, 작가는 모든 이야기를 정렬로 썼다가 그 구조를 아예 부서뜨린 다음, 여기저기 사실과 기억의 파편들을 재구성 했을 것이다. 너무도 복잡한 구성과 흐르지 않는 이야기에 대한 답답함으로 처음 약 80페지 가량을 견디지 못하고 책을 덮어버리게 될 가능성이 아주 큰 소설...
최근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의 훌륭한 소설을 읽는 멋부리기.
도무지 쉽게 넘어가지 않는 책을 정독 또 정독하고 난 후에 드디어 다가오는 감동.
천재적인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를 알게 되는 기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