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이 빤히 보이는데
그것을 말하지 못하는 이의 마음을 일부 공감할 수 있다.
어떻게 해주지 못함에 안타까움이 크다.
대학원 다닐 때, 나의 엄마(지도 교수님)는 간간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가만히 앉아서 들여다봐. 그러면 보일 꺼야”
그런데 가만히 앉지 않아도 훤히 내다보이는 이 현실은 어찌 해야 하는 것일까.
해줄 수 있고
해주고 싶고
그러면 조금의 변화도 있을 터인데
행동을 하기가 쉽지 않다.
현실 장벽!
그것을 깨는 것은 그러니까 하지 않았던 것을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위험이 있다.
그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 위험은 나의 위험이고
그렇지만 내가 그 위험을 감수하였을 때는 다른 이들에 눈 뜨임의 계기가 된다.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지난 몇 년간은
내게 벌어질 위험이 두려워 등 돌려 모른 척 하기도 하였었다.
우선 나부터 살고 보자는 마음에서.
오랫동안 했던 활동을 멈췄었다.
찾아 가지도 않았고
찾지도 않았고
찾아올 수도 없게 하였다.
단칼에 뭔가를 베어내 듯 잘라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 24시간 울려 대던 전화기의 알림 음이 멈췄다.
소통이 끊겼다.
소통의 단절을 내가 만들었다.
내가 소통해야 하는 사람들과 단절한 동안 나는 일방적인 소통을 하고 있었음을 나를 반성하는 동안 알게 되었다.
병원에 가보면 환자에게 등 돌린 간호사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럴 수 있느냐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일방적인 판단으로 그들을 지적하였던 내가 민망하다.
그들도 어쩌면 나처럼 살고자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의 상황에 빗대어보니 그들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만남을 하면 보인다. 표정과 대화를 통해서.
이론에서 우리가 자주 접하는 언어적 비언어적 소통을 통해서 문제를 알 수 있다.
만남은 관심이다.
근래 들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이들을 마주하는 나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지금 해야 하는데’
‘지금 놓치면 다시 길 위에 서기도 힘들 터인데’
이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다.
다시 핸드폰에서는 쉬지않고 알림이 울린다.
우선은 내가 문을 열었기에 그들의 다가섬이 시작되었다.
그들도 쉽지 않은 발걸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언가를 구하려는 발걸음이고 이유 있는 걸음걸이일 것이다.
나의 과거 경험을 비추어 볼 때
육체적으로 힘듦의 시작이다.
계속 엮이고 엮일 것이다.
하면 할 수록 더 해야 할 것이다.
될 때까지 해야하니까.
내가 걸어갈 길도 자갈밭인데......
나는 지난날 나의 실패를 거울삼아 서로에게 상처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숙고하여야 할 것이다.
조용히 물 흐르듯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최대한 자연스럽게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방법을 몰라 못하는 것은 설명해주고 알려주어 잘 하게 하면 된다.
헤매는 이들은 바늘구멍같은 빛도 목표를 향해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