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가 오로지 하나의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건 착각이다. 집에 가는 길을 일부러 돌아가본 사람은 안다. 기어가는 개미의 눈높이로 길거리를 봐본 사람은 안다. 내가 잘 안다고 생각한 세상이, 이 익숙한 세계가, 얼마나 낯선지를. 농담이 아니다. 지금 당장 집 밖으로 나간 뒤 쭈그려 앉아 문을 올려다 보라. 그리고 느껴보라. 당신이 발로 차 닫았던 그 낡고 녹슨 철문이 얼마나 생소하게 다가오는지.
사람들은 이 세상이 빡빡한 질서를 고수하는 불변의 수도승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가 세상의 다양성을 알아채지 못하는 건 우리가 세상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세상에 집중해 보라.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뽐내고 싶어하는 사물들의 환호성이 들리지 않는가?
우리가 이 세상에 낯섦을 느끼기 시작할 때 철학은 시작된다. 왜? 철학은 지식에 대한 사랑이다. 지식은 의문에서 나온다. 의문의 연료는? 호기심. 그렇다면 이 호기심을 싹 틔우는 게 무엇일까? 바로 낯섦인 것이다.
우리는 생각없이 소리를 지르며 방안을 뛰어다니는 어린아이의 삶을 부러워 한다. 나도 저 아이들처럼 생각없이 살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어린이야 말로 진정한 사색가다.
아빠 나는 왜 태어났나요?
그건 엄마가 너를 임신했기 때문이야.
왜요?
아빠가 엄마랑 결혼을 했거든.
왜요?
엄마가 예뻤어.
왜요?
얘야 시간이 너무 늦었구나. 이제 잘 시간이란다.
어린이는 세상의 모든 것을 강박적으로 탐구한다. 이 모든 세상이 낯설고 흥미롭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따분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계는 알고 싶은 것으로 가득한 바다다. 아이들은 매일같이 그 바다로 나가 호기심을 충족시킬 만큼 가득가득 지식을 낚아 올린다.
불행하게도 아이는, 자신이 많은 것을 알았다고 느꼈을 때 어른이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세계에 대한 질문을 멈춘다. 맑고 푸르던 호기심의 바다는 검고 끈적끈적한 일상이 되어 어른을 집어 삼킨다. 어른은 심해로 침몰하고, 남은건 전동차의 빈 자리를 향해 질주하는 탐욕과, 앉자 마자 잠에 드는 나태함과, 스마트폰으로 야구나 시청하면 그만인 별볼일 없는 퇴근길이다.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깨닫지 못하는 이상 우리의 삶은 여전히 썩은 내를 풍기는 생선일 뿐이다. 지긋지긋한 권태. 지리멸렬한 시간들. 세상에서 다시 낯섦을 느낄 때 호기심의 톱니는 돌고 일상은 다시 따뜻한 탐구열로 차오를 것이다. 그러니 껍질을 벗기자. 무관심으로 덕지덕지 때가 낀,
이 세상의 껍질을 벗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