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나무의 학명은 카멜리아 시넨스스Camellia sinensis이다. 카멜리아 시넨시스 이름은 중국의 동백나무라는 뜻이기도 한다 카멜리아 시넨시스는 전 세계에 500종 이상의 다양한 폼종이 분포되어 있는데, 그냥 茶 나무'로도 불린다 차나무는 속명 논란이 무성했으나 1905년 국제식물학회에서 동백나무과 Theaceae 동백나무속으로 최종적인 결론을 내리게된였다.식물학적 기원은 6000만에서 7000만년 전으로 추정된다.
카멜리아'라는 이름은체코 출신의 선교사이자 식물학 개적자로 유명한 게오르그 요셉 카멜 Georg Josef Kamel 1707~1778년'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사실 그는 차나무를 발견하지 않았고, 이름을 붙인 장본인도 이니다 스웨덴 식물학자 칼 린네 Carl von Linne 1707~1778년'가 식물학에 공헌한 카멜을 기년하기 위해 차나무과 (동백나무과)의 여러 속 중 하나에 그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참고로 시넨시스'는 라틴어로 중국의'라는 뜻이다.)
찻잎은 아시아에서만 재배된다. 차는 오래전부터 중국, 일본, 인도, 스리랑카, 대만에서 재배됐고 오늘날 이들국가는 최고급 茶 생산지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중국은 차의 출생지나 다름없을 뿐 아니라, 현재 우리가즐기는 여섯 종류의 차를 만드는 법을 발달시켜왔다. 또한 여섯 종류의 차를 만드는 법을 발달시켜왔다. 여섯종류의 차를 모두 생산하는 유일한 국가로서 흑차를 독점적으로 조달하며 흑차는 2차 발효 공정을 거쳐야하기 때문에 다른 종류들과는 두드러지게 차이가 난다.
19세기 초반까지 아시아 국가로 한정되던 차 재배와 가공은 특산차시장 special tea 의 확대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증가한 티백 소비량을 충당하기 위해 40개국으로 확산되였다. 일부 문헌에 따르면, 일본이 일찍이 나라시대 710~794년'에 차를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연도는 확실하지는 않다. 그후 805년 헤이안시대에 천황이 파견한 외교 사절단의 일원으로, 공부하러 당나라로 갔던 승려 사이초와 구카이가 차나무 종자를 가져왔다는 기록된 이야기가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사이초와 구카이가 돌아온 직후 황제가 차 재배를 장려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왕족과 승려만이 차를 마셨으나 곧 사무라이 계층으로 확산되었고, 17세기에 이르러 대중에게까지 전파되었다. 오늘날 일본은 녹차로 유명하지만 홍도도 일부 생산한다. 일본의 차 산업은 사람의 노동력에 의존하는 중구과 다르게 컴퓨터 자동화 공정을 활용하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생산 방식을 구축했다.
1662년 포르투갈 왕녀인 브라간사의 캐서린 Catherine of Braganza'이 영국의 찰스 2세와 결혼하면서 영국 궁정에 차 문화를 전파한 이후, 모든 영국인들은 이 음료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편전쟁을 계기로 중구과의 무역이 어려워지자, 영국은 주요 수입 품목이었던 차를 공급받을 수 잇는 다른 통로를 모색하기 시작한다.
19세기 중반,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와 스리랑카 (옛 실로)에 커다란 차 농장을 설립하고, 아삼종이 인도 야생에서 자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들이 수세기 동안 마셔온 중국종이 더 우수하다고 여겨 중국종을 심었다. 그리고 중국에서 수작업으로 하는 공정 상당 부분을 대체할 기계를 개발한다. 이러한 발전은 차 산업에 혁명을 기져왔다. (참고로 인도와 스리랑카는 역사적으로 홍차가 유명하지만 현재는 백차,녹차,소량의 우롱차도 생산한다고 한다.)
중곡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대만도 이상적인 차 재배였지만, 실제 차 재배지로 유명해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대만은 180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차나무를 심고 수출을 시작했다. 현재 대만은 우롱차로 유명하며, 대만의 우롱은 1544년 포르투갈인들이 대만의 경치에 감탄해 붙인 이름인 일랴 포르모사 ( Ilha Formosa,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를 따 포르모사 우롱이라고도 부른다. 또한 대만은 품질 좋은 홍차와 녹차의 생산지이기도 하다.차 재배는 아시아에서 세계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갔으며 오늘날엔 케냐가 최고 수출국이 되었다.
현재 러시아 흑해 연안을 비롯해 르완다의 고지대, 뉴질랜드, 호주, 에콰도르, 우간다에 이르는 여러 지역에서도 다양한 규모로 차가 재배되고 있다. 그리고 미국에서도 소규모지만 차가 재배된다. 미국에 차나무가 처음 심어진 때는 1800년경이다. 프랑스 루이 16세 당시 왕실 식물하자였던 프랑수아 앙드레 미쇼가 사우스캐롤이라나로 차나무를 들여왔고, 이 차나무는 다른 꽃들과 더불어 찰스턴 근교에 있는 유서 깊은 정원인 미들텐 바로니 플랜터이션에 심어졌다. 1800년대 중반에 드리어 미국 일부 지역에 차 농장이 생겨났지만 1907년에 전부 문을 닫고 만다. 운영자가 사망해 폐업한 곳도 있고, 운영비 문제나 분쟁으로 문을 닫는 곳도 있었다고 한다.
그 뒤로 지지부진하던 미국의 차 생산은 1960년대 초반에 유명한 차 회사인 립톤Lipton이 찰스턴 카운티의 워드맬로 아일랜드에 실험적인 차 농장을 세우면서 다시 일어났다. 이 농장은 25년간 운영되었다가 이후 동업관계에 있던 두 사업자에게 경영권이 넘어가 찰스턴 차 농장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걸고 높은 품질의 차를 계속 생산할 수 있었다. 그러다 두 사람의 사업적 관계가 틀어지면서 2003년에 농장 부지가 경매로 넘어갔다. 근데 다행히도 비글로우R.C. Bigelow사가 개입해 농장을 다시 살린다. 덕분에 차를 계속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에섣 특산차를 즐기는 사람이 꾸준히 늘면서 미국 내 차 재배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도 북미산 차가 특산차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지 기대가 된다.
또한 더 놀라운 일이 영국에서 발생했다. 영국은 엄청난 차 소비에도 불구하고 기후 문제로 차나무 재배가 어려워 수백 년 동안 인도, 스리랑카, 아프리카에서 재배한 차로 수요를 충당해 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영국인들도 자국 땅에서 차를 재배할 생각을 하게되었다고 한다. 이 엄청난 도전을 받아들인 사람은 보스카원 Boscawen 가문의 팰머스 자작이다. 그리고 그 도전의 배경에는 콘월의 트레고트난에 카멜리아 시넨시스를 심으라고 조언한 원에가 조나단 존스가 있었다.
죤스는 1996년에 팰머스 자작과 자작부인이 자신을 불러 유규한 역사를 자랑하는 브스카웬 가문의 정원을 향후 수백 년 동안 지속할 방법을 찾아달라고 부탁한 일화가 있다. 존스는 연구 끝에 카멜리아종 재배가 해답이라는 걸 알아내고 트레고트난의 지형과 기후가 인도의 다즐링 재배 지역과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했고, 강한 바람이 묘목을 망가뜨려 첫 시도에서는 큰 수확을 얻지 못했지만 결국엔 트레고트난에서 차를 성공적으로 재배해 내고 말았다. 영국에서 최초로 재배된 차는 찻잎을 분쇄하지 않고 잎차 본연의 맛이 살아 있는 루스리피 티로 포트넘 앤 메이슨에서 2005년부터 판매해고 있다.
중국의 茶가 중국을 중심을 두고 주변국가로 펴져가 지금은 전 세계에 각 나라에서 자기 땅에 맞는 차 재배를 연구하고 있다고 하니, 요즘시대 사람들은 건강한 삶을 추구함으로, 머지않아 음료계 대왕인 커피보다 차를 즐기는 사람들이 들어 날 것으로 추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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