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면서 나는 자존감이 조금 부족한 아이였던 것 같다. 물론 대학생 때는 부과대표도 하고 조금씩 내 목소리를 냈지만 어렸을 땐 굉장히 소극적인 아이였다. 누군가 앞에서 발표라도 해야 할 때면 얼굴부터 발갛게 상기된 아이, 부끄럼이 많았던 아이, 내 감정에 대해 잘 몰랐던 아이. 그것이 나였다.
그것은 사회통념상 내가 여자아이로 자랐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내 성격자체가 소심 A형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고, 또는 내 감정이나 기분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도록 배우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내가 사회 초년생일때는 지금은 직장내 성희롱으로 규정할 수 있는 행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만연했었다. 상급자의 옆자리에 앉아서 술을 따르도록 암묵적인 강요를 받은적도 있었고, 악수할 때 상대방의 손가락 하나가 내 손바닥을 긁는 행위를 경험한 적도 있었고(사실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는 거 말고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그사람은 그 행위를 했는지 그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또는 부르스를 강요받은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난 그러한 행위가 그냥 사회 초년생이면 으레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직장을 때려 치울 게 아니면 어느 정도 선에서 상사의 비위를 맞추어 주는 것이 차후 진출과 승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들어 사회나 회사 분위기가 그 때에 비하면 많이 변했다. 회식 자리에서 술을 권하는 문화도 많이 줄어들었고 상사들도 여직원이나 아랫사람을 예전처럼 하대하거나 막대하는 갑질문화도 많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직장내 성희롱같은 사건이나 얘기들을 가끔 접하게 된다.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아직 우리 나라의 직장문화가 나가야할 길이 멀었다는 생각도 들면서 여자들도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직장내 성희롱은 남녀를 떠나서 행위자에게 전적으로 문제가 있지만 피해자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은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싫다면 정확하게 자신의 의사를, 기분을, 입장을 분명하게 전달하고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살지 못했으니 우리 아이만이라도, 특히 딸아이 만큼은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알고,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를 솔찍히 표현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들이 5살, 3살이 되다보니 두 남매가 잘 놀다가도 둘이 다투거나 너무 심하게 놀아서 중재가 필요할 때 엄마를 찾는다.
(울음 먼저 터트리며) 아앙~~~ 엄마~~오빠가 콩슈니 뺐아갔쪄..
오빠가 자꾸 귀찮게 하거나, 몸 싸움을 하거나, 장난감를 빼앗아서 돌려주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럴때 제3자이자 엄마인 나는 왠만하면 둘이서 해결하도록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우 딸아이한테는 자신의 의사를 명확하게 전달하도록 가르친다.
시은아! 니가 싫으면 오빠한테 '하지마!!'라고 정확하게 말해. 누군가가 하는 행동이 싫으면 싫다고 단호하게 말해야해. 알겠어?
그럼 딸아인 곧바로 오빠에게 달려가 나름 큰 목소리로 말한다.
오빠 하지마!!
그럼 나는 아들인 첫째에게도 명확하게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지웅아~ 시은이가 싫다고 하지말라고 하잖아. 그럼 하면 안되는거야. 누군가가 싫다고 하지말라고 하면 더 이상 싫은 행동을 하면 안돼. 그건 시은이가 아닌 다른 친구들한테도 마찬가지야.
나는 자라면서 엄마나 학교 선생님한테나 어느 누구한테나 이런 것을 배워본 적이 없다. 그저 "니가 언니니까 참아, 동생한테 양보해야지, 원래 여자들의 삶이 다 그렇지 뭐.."라는 얘기만 귀가 따갑게 듣고 살았다.
이제는 남자든, 여자든 자신의 감정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분명하게 표현하는 시대가 아니던가. 나는 그러질 못했으니 우리 아이들만이라도 그렇게 키우고 싶어 요즘 나는 아이들에게 자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연습시키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