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역사적인 날이니, 오늘 트럼프의 행보에 대한 짧은 단상을 남겨 봅니다. 다 쓰고 보니 짧은 글은 아니네요. 외교 비전문가, 외알못의 글입니다만, 그냥 제 생각입니다.
오늘 트럼프의 행보를 보며 전략적인 폴리테이너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정치를 쇼로 만들고, 사람들로 하여금 주목하게끔 하는 재능이 있습니다. 사실 주목받기 좋아하고, 즉흥적인 의사결정을 하며 직설적인 감정 표현을 하는 정치지도자는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지도자들과 트럼프는 좀 다릅니다. 트럼프는 매우 섬세한 전략가입니다. 즉흥적이지만 셈법이 있습니다. 극적인 효과,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막말도 나름 노림수가 있습니다.(물론 혐오를 부추기는 그의 발언은 분명 잘못이고, 어떤 노림수로도 혐오정치에 편승하고 부추기는 그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트럼프 특유의 성격이 남과 북에겐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동북아 정세는 결국 미국의 리더십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에도 그랬습니다. 클린턴 정부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지 않았으나, 워낙 남북관계 개선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었죠. 하지만 2000년에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자, 그 관계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었습니다. 9.11 테러 이후에 부시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고, 그 이후엔 북미간에 어떤 진전도 있을 수 없었습니다.
주체적으로 관계 수립을 시도했던 참여정부도 임기 내내 미국의 대통령이 부시였다는 것이 한계였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지지층을 실망시켰던 결정인 '이라크 파병'의 이유가 '미국의 북폭 우려'라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으로 전장이 확대되면서 부시와 오바마 정부는 한반도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한국 일각에선 오바마 정부에 대한 기대가 살짝 있기도 했는데요. 미국 민주당이 북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은 '무관심'이거나 '강경'일 때가 많습니다. 어떨 때엔 미국의 민주당 인사들이 공화당보다 북한에 대해 더 강경하기도 하죠.
그런 반면에 트럼프는 예측불허입니다. 근데 일관성은 있습니다. 본인의 재집권에 도움이 되느냐죠. 트럼프는 경제와 외교에서 성과를 내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북한과는 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있죠. 지금 미국과 이란의 관계도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지금보다 갈등이 극심해지면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도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것이 있기 때문에 임기 후반인 올해 말부터 내년까지 북미간의 협상이 상당히 진전될 수도 있습니다. 지난 싱가포르 회담에서 모든 문제가 타결되기엔, 트럼프의 임기가 너무 많이 남아있었죠.
저는 한반도의 미래가 한 정치인 특유의 성격에 달린 것이 슬픈 현실이지만, 그걸 받아들이고 감안한 전략을 짜야한다고 봅니다. 트럼프가 아닌 힐러리가 대통령이 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상황이 만들어졌을까를 상상해보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트럼프였기에, 또 적절한 시기에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됐기에 지금의 국면이 가능했습니다. 한반도에 평화가 도래해 많은 기반이 달라졌음 하는 기대가 있지만, 트럼프를 보면 순진한 기대를 해선 안 된다는 생각도 듭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주제가 떠오르는데요. 아니 얘기해보자니, 흥미롭기보단 씁쓸한 주제네요. 바로 트럼프를 이명박 전 대통령과 비교하는 것인데요. 두 사람은 매우 다르지만,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때론 그 방법이 상당히 창의적이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사회는 트럼프 개인의 이익을 사회 전체의 이익을 상당 부분 일치시키는데 성공한 반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그저 수준 이하의 사익추구로 치닫다가 몰락했습니다. 트럼프의 이익 추구를 사회에 득이 되게 한 원동력이 '재선 가능한 제도'였는지, 아니면 그 사회 특유의 문화와 다른 법제도 때문인지는 더 분석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