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세자르 영화제에서 가장 커다란 주목을 받은 영화다. 2007년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압델라티프 케시쉬의 세번째 작품이다. 케시쉬는 1960년 튀니지 출생으로, 여섯 살 때 프랑스에 이민왔다. 영화의 주인공 슬리만은 감독 자신이 바라 본 아버지의 초상같다는 추측을 불러 일으킨다. 본토박이 프랑스인들에 비해 이민자의 삶은 턱없이 불리하다. 한순간 실직자가된 어부는 생계를 해결할 방책이 없게 되자 지역 관할부서를 찾아간다. 이러한 내러티브적 설정을 통해서 케시쉬는 이민자의 상황을 설득력있게 다룬다. 평생 고기잡이 일을 하며 살아온 슬리만에게 어선이 고장나는 순간은 곧 죽음이나 다름없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어선을 재활용하는 방법을 필사적으로 모색하게 된다. 사건들을 연결하는 키워드는 '가족'이다. 슬리만은 재혼을 했지만 전처와의 사이에 장성한 자녀들을 두고 있다. 전처의 자녀들은 결혼을 해서 각자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어머니가 다른 자녀들이 한데 섞이는 순간이 영화 결말에 배치된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 움직임는 프랑스 사회에서 이민자로서 소외를 느끼면서 살아가는 혼란감을 전달하는 듯하다. 카메라는 관객의 주의를 이끌면서 영화 속 이미지를 따라가기를 호소하는 듯하다. 두번째 아내 사이에 둔 딸 림은 슬리만이 부양해야 하는 마지막 자녀인 것이다.
감독은 관객에게 골치 아픈 현실을 한 걸음 떨어져서 보라고 권한다. 그는 관객이 감정적으로 자극되지 않고 영화를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를, 현실을 관조하기를 바란다. 주목을 끈 것은, 배우들의 꾸밈없는 연기 스타일이다. 배우들은 영화 속 실제 인물인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친다. 연출되지 않은 스타일로 연기하는 듯 보일 만큼 연기는 자연스럽다. 픽션이 주는 리얼리티는 배우들의 연기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에릭 로메르의 영화에서 배우들이 극중 연기를 하는 것이 연기가 아닌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이는 경우와 유사하다.
케시쉬는 클라이맥스에 림의 격정적인 움직임이 나타나는 밸리 댄스 씬을 배치한다. 스펙터큘러한 댄스는 비교적 긴 시간을 할애해서 보여진다. 결말에서 에너지가 넘치는 림의 춤은 같은 시각 도로변에서 오토바이를 찾아다니다가 지쳐 기력이 빠져버린 슬리만의 소진된 신체와 대조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