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시간, 당신의 일상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겉으로 보이는 옷 안에 무엇이 감추어져 있는지, 낯익은 사람을 보고 눈을 감아버린 것은 무엇 때문인지, 방금 내가 길거리에서 사먹은 붕어빵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8800원으로 살 수 있었던 책을 찾을 수 있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새로 산 핸드폰에 카톡방이 전부 사라져서 얼마나 아쉽고 홀가분한지 결코 타인은 알지 못합니다. 당신의 일상은 온전히 당신만의 것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때로 일상은 지독히도 외롭습니다. 오르텅스 블루가 시에서 말했던 것처럼.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외로움에서 벗어나고자 우리는 타인에게 관심을 주기도 하고 구하기도 합니다. 돌아오는 것은 판단이기도 하고, 동정일 수도 있고, 공감 같은 위로에 그칠 수도 있습니다. 주고 구하는 관심이 지나쳐 집착이 되어 타인을 질리게 하기도 하고, 돌아오는 충고나 비아냥은 때때로 손톱이 되어 내 마음에 생채기를 냅니다. 한 사람의 마음에 진정으로 와닿는 다른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기에 외로움은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NLP의 관점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현상을 해석합니다. 같은 순간을 공유했더라도 떠오르는 기억이 다르고 반응의 정도와 양상이 다른 것을 생각한다면 외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 자체가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욕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과 통한다는 느낌 자체가 외로움을 피하기 위하여, 공유한 시간이나 유사성을 핑계 삼아 빚어진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LP에서는, 아니 우리는 소통을 구합니다, 유사성에 기댄 매칭, 긍정에 기댄 피드백, 호기심에 기댄 질문으로. 루디야드 키플링은 그의 시에서 말합니다.
"천 사람 중의 구백아흔아홉 사람은 떠나갈 것이다.
너의 표정과 행동에 따라, 또는 네가 무엇을 이루는가에 따라.
그러나 네가 그 사람을 발견하고 그가 너를 발견한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문제가 아니리라.
그 천 번째 사람이 언제나 너와 함께 물 위를 헤엄치고
물속으로도 기꺼이 가라앉을 것이기에."
"형제보다 더 가까이 네 곁에 머물 사람"
"세상 모두가 등을 돌려도 친구로 남을 사람"
"당신의 진실한 감정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곁에 있을 사람"
그런 천 번째 사람을 위해, 그런 천 번째 사람을 찾기 위해 준비한 네 단어가 있습니다.
"미안해", "용서해줘", "고마워", "사랑해"
천 번째 사람을 위해,
혹은 천 번째 사람을 찾기 위해,
오늘부터 하루 하나씩 전하는 건 어떠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