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작가가 그랬던 건 아니지만 많은 작가들이 그랬듯 저도 다른 업을 거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거나 창업/사업을 한 적도 있고, 글도 처음에는 시나리오, 다음에는 드라마 작가를 거쳤습니다. 지금은 소설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전직 시스템이 이상하게 꼬였는지 수입이 점점 줄어드는... 비가역적 전직은 꼭 신중하게 결정하세요.
아무튼 그중에는 가장 오랫동안 꿈꿨지만 끝내 이루지 못한 업도 있는데요. 네, 제목에서 말씀 드렸다시피 만화가입니다. 얼마 전 케이지콘님이 올리신 단편 소설(+가사...)을 보다가 문득 작업한 게 떠올라서 올려 봅니다.
위에는 미니시리즈 드라마로 썼던 이야기를 웹툰으로 각색한 건데요. 드라마/웹툰 둘 다 결과는 안 좋았죠. 저때 힘을 너무 쏟았는지 이후론 그림을 안 그리게 됐습니다. 슬램덩크냐... 이 이야기는 5년 후 똑같은 컨셉과 인물 구성의 드라마가 나오는 바람에 버렸습니다. 뭐 다들 한 번씩 겪었을 우연의 일치죠. 이게 한 번이 아니긴 했는데 이 작품에는 유독 공을 들였던 탓인지 드라마 쪽에서도 완전히 발을 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공모전은 못 뽑히면 버린단 각오로 도전하세요. 여러분 작품이 얼마나 쉽게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지 알면 공모전 못 내실 겁니다)
지금 보니 꽤 공을 들였었네요 :ㅇ
신카이 마코토의 영향을 받아서 배경에 정성을 들였던 것 같습니다.
7할은 지인의 도움이 컸습니다.
지인이 드로잉을 따면 채색과 보정은 제가 하는 방식이었죠.
일부 오브제는 3D 툴의 도움을 빌리기도 했군요.
이 자동차는 선 따는 것부터 제가 작업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진을 필터 먹여서 이리 저리 만지면 됐을 것을 미련하게 채색까지 손으로 다 했네요.
클로즈업 컷도 이전 컷을 확대해서 쓰지 않고(혹은 반대로 축소해서 쓰기도 하죠) 다시 새로 그렸습니다.
실제로 연재하는 작가분들에겐 비효율적인 방법입니다.
그런데 저는 반복되는 컷이라도 일일이 그려주는 작가들이 좋더라구요... 제 취향입니다 ^^;
선의 강약이 거의 없죠?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스케치부터 펜선까지 타블렛으로 작업했는데 적응이 힘들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채색 방법 때문인데요. 거의 모든 작업을 포토샵에서 했는데 밑색 까는 데 버킷툴을 썼었죠. 색이 빠져나가지 않게 하려다 보니 선이 끊기지 않게 하는 데에만 신경 썼던 것 같습니다. 클립 스튜디오 같은 툴이 그때도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요.
그러다 보니 분위기를 내려고 광원에 엄청 신경 썼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골든 아워 장면이 많이 나왔네요.
배경과 오브제를 훑어주는 연출도 좋아했습니다.
조명을 이용한 묘사도 좋아했구요.
이렇게 조명을 적당히 어둡게 만들어 주인공의 복잡한 심리를 표현한 컷도 보입니다.
그때도 사진을 무척 좋아했었기에 에피소드에 관련된 장치로 넣어줬습니다.
그림 그리는 분들은 이해하실 텐데 중년이나 노인 그리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애니메이션에 영향을 받은 연출도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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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라는 작업은 중노동에 가까워서 저랑 안 맞다는 걸 저때 확실히 알았습니다. 끈기라는 가장 필요한 재능이 부족했지요. 궁극적으로 제가 하고 싶었던 건 스토리텔링이기에 그림에서 글로 도구를 완전히 바꿨을 뿐이지만 가끔, 아주 가아아아아끔 그때의 열정이 생각나곤 합니다. 특히 스팀잇에 올라오는 멋진 그림들을 볼 때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가업을 잇느라 선수의 꿈을 접은 변덕규도 후회없는 인생을 살고 있을 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