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자식만 키우시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부터 형편 없는 임금을 받으며 여기저기 일을 다니셨다. 그러다가 자영업도 해보셨는데 내가 아무리 조언을 해드려도 듣지를 않으시다가, 지금은 정리하셨다. 내가 한 조언이 특별한건 아니고 단지 수익성을 제대로 따져보라는게 전부였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값을 너무 적게 받으셨다. 그래서 손님은 많아도 남는건 없었다. 정말로 남는게 없던 어머니는 "남는게 없다."는 말도 남기지 않고 가게를 정리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지혜를 존경했다. 내가 어려운 질문을 드릴 때, 답 뿐만 아니라 질문의 의도까지도 꿰뚫어 보셨다. 하지만 어머니의 통찰력은 시간이 지나며 색이 흐려졌다. 삶에 대한 걱정이 늘어가며 지성에 그림자가 드리웠으리라. 나는 그게 너무나 안타까웠다. 당연히 자식으로서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는게 첫번째, 부모의 미래에서 나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는게 두번째 이유였다. 그래서 작년 가을쯤, 당신은 앞으로 아무 것도 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렸다. 앞으로 내가 다 책임지겠으니 그냥 노시라고.
나는 몇번의 기회에도 고향을 떠나지 않고 남았지만, 동생은 적극적으로 고향을 떠났다. 어머니께 등록금을 갚겠다며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했는데, 평일부터 주말까지 아르바이트로 일정을 꽉 채워놓고 학업에는 소홀했는지 학점이 박살났다. 그러라고 등록금 내주신게 아니니 똑바로 하라고, 어머니 대신 내가 꾸짖었다. 그리고 그렇게 다닌 학교에서 졸업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동생은 결혼을 했다. 자식은 신기할만큼 부모를 닮았다. 어머니도 대학 동기셨던 아버지와 그쯤 결혼하셨다. 나는 변종인게 분명하다.
어머니는 딸이 자신만의 시간을 오래 가지길 원하셨다. 하지만 동생은 어머니보다도 이른 나이에 자식을 품에 안았다. 그렇게 자신의 꿈과 멀어지는 것 같던 동생은, 문득 다시 꿈을 따라가겠다며 집에 딸을 맡겼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셔야 했던 어머니는 손녀를 돌보는 무지막지한 업무에 시달리시게 되었다.
동생은 반년정도 어머니에게 자신의 딸을 맡겨놓을 예정인데, 짧다면 짧은 세월이지만 나에게는 더디게만 느껴진다. 효도의 때는 항상 늦는다고 하는데 어깨가 너무 아파서 테니스도 쉬고 계신 어머니의 어깨가 더욱 상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그리고 조카가 돌아가면, 꼭 프랑스에 보내드릴 것이다.
아버지는 프랑스에 출장을 자주 가셨다. 그러면서 한번도 베르사유 궁에 가신 적 없다. 언젠가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를 가게 될 때 처음으로 방문하기 위해 아껴두셨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그 날은 오지 않았지만, 어머니께 베르사유 궁을 보여드리고 싶다던 당신의 바람은 이루고 싶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내가 가진 모든 성질은 부모님에게 받았다. 과연 아버지의 낭만은, 나에게 어떤 모습으로 계승되어있을까.
아... 더 잘 쓸 수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