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나빠졌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 증거로 리모컨을 찾기가 힘들다, 어제 보았던 TV 프로그램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며칠전 식단과 누굴 만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와 같은 사례들을 이야기 하곤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증상을 토대로 자신의 뇌기능이 저하되어 더 이상 새로운걸 학습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본격적으로 논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한가지 이야기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개인의 정서, 태도가 육체, 정신에 끼치는 영향은 아주 거대합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가진 사람은 면역력이 상승합니다. 불안함을 해소하는 음악은 면역체계를 활성화시킵니다. 고해성사, 일기, 그룹테라피, 심리상담 등 자신의 트라우마를 털어놓는 경험은 면역력을 상승시킵니다. 면역에 국한된 일도 아닙니다. 자신감이 얼마나 중요한가, 낙관을 지닌 것이 성취도, 수명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등은 끊임 없이 연구되고 증명되었습니다. 가장 흔히 알고 있는 것으로 플라시보 효과도 있습니다. 실제로 효능이 없어야 할 위약을 복용자가 효과 좋은 약이라 생각하고 복용하면 실제로 효과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뇌기능은 쇠락하고 있어."라는 믿음 하나만으로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뇌는 예측의 도구입니다. 다음에 올 일을 예측하는게 뇌의 주요 업무입니다. 지능검사도 패턴에서 다음에 올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가 주를 이룹니다. 여러분들이 계단을 오를 때, 계단의 높이를 눈으로 확인하고 눈대중으로 발을 얼마나 들어서 움직여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경험을 토대로 뇌는 어느정도 발을 들어야 정확하게 계단을 오를 수 있을 지 쉽게 답을 냅니다. 구기운동을 생각하면 논의가 더 쉬울지도 모릅니다. 경험이 쌓이면 쌓일 수록 우리는 공의 궤도를 끝까지 바라보지 않습니다. 공이 날아올 방향을 예측하고, 경험을 토대로 그 궤도에 맞추어 받아치는 자세를 취합니다. 더 나아가 내가 받아친 공이 날아갈 궤도, 이를 받아칠 상대의 자세, 그 다음 공이 떨어질 위치까지도 끊임 없이 예측합니다. 이러한 예측은 경험을 토대로 일어나며 경험의 저장이 곧 기억입니다.
우리 뇌는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것을 기억합니다. 이는 특히 퇴행을 겪는 알츠하이머 환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족 누구도 의식의 표면에 떠올리지 않고 있던 기억이 이들에게는 어제처럼 생생합니다. 그렇다면 흔히 기억력 감퇴라는 말은 가지고 있던 기억의 상실이 아닙니다. 뇌는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느끼는 기억력의 감퇴는 '기억력'이 줄어드는게 아니라 뇌에 저장된 기억을 꺼내는 능력의 감소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는 사실 아주 간단한 인과관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측을 위해 경험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 경험을 기억의 형태로 지니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측에 전혀 필요 없는 기억은 어떻게 될까요? 이미 충분히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면 이를 의식의 표면에 생생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가 겪는 노화로 인한 기억력 감퇴가 여기서 나오는 현상입니다. 매 순간 뇌는 경험을 기존에 가진 기억과 대조합니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게 많을 수록 그 경험은 새롭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존에 가진 것과 다름 없는 경험을 새로이 받아들이는 것은 예측의 능력을 향상시키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뇌는 일상에서의 몇몇 경험들을 굳이 꺼내기 쉬운 곳에 저장하지 않습니다.
막상 나이 많은 이들과 젊은 이들의 암기력을 시험하면 나이 많은 이들이 유의미하게 높은 수행능력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경험을 토대로 '효과적으로 기억하는 법'조차도 젊은 이들을 압도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혹시 뇌기능이 저하되고 있다는 생각에 자신감을 잃고 있다면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해보는건 어떨까요? '노인이라면 당연히'라는 생각에 새로운 경험을 피하고 익숙한 것만 찾는다면 정말로 뇌기능의 감소로 이어질 것입니다. 육체도 지속적으로 단련하지 않으면 근육이 줄어들듯 뇌도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