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집착을 갖고 있다. 글쓰기에 메달린지 몇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글쓰기가 내 물질적 삶에 기여하지 못하는 것도 글쓰기가 원래 그렇기도 하지만,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내 집착에도 책임이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 내가 말하는 아마추어리즘이란 글쓰기를 가벼이 여기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지향하는 아마추어리즘이란, 글을 대하는 태도는 진지하되 시장원리에 따라서 전문화하지 않고 이익관계에 휘말리지 않는 자유로움을 지키는 자세다.
"네가 가진 도구가 망치 뿐이라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일 것"이라는 말을 떠올려보자. 효율과 전문화를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사내에서 사원들을 대상으로 한 시연회는 극적인 예시 중 하나다. 조직이 거대하면 더욱 세부적인 전문분야가 나뉘고, 각각의 조직원들은 제한된 시각을 갖기에 경직된 조직이 되기 쉽다. 그래서 IT 기업들에서는 인문학자의 채용 비율을 높이고 있다. 그 인문학자들이 각각의 전공분야에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그들이 개발에 뛰어든다. 전통적인 전문가가 아닌 기존과 다른 시야를 가진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전문화를 위해서는 평생을 바쳐야 했던 과거와는 다르게 지금은 접근성이 계속해서 좋아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전통적인 전문가와는 다른 인재들의 시각이 필요하기만 한게 아니라, 전문성을 갖추는데 필요한 시간도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짐에 따라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기업에서는 새로운 시각을 받아들여서 창발을 이루어낸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각각의 분야들이 나에게 주는 시각들의 집합은 창발을 이루어 낼 수 있는가? 여기에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가보아야 알 수 있는 미래다. 그래서 내가 가진 시각들을 자유롭게 풀어내기 위해서 나는 글쓰기를 택했다.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Bramd님이 하셨던 '지속가능한 아마추어리즘'이라는 말도 떠오른다. 추가적인 투자 없이도 꾸준히 창작자를 지원할 수 있는 스팀에서 그 가능성을 보셨다는 말씀이다. 지속가능성은 취미로서 단지 즐길 뿐인 아마추어가 아니라 서두에 밝힌 것과 같은 아마추어리즘을 지향하는, 이른바 프로페셔널 아마추어들에게는 생존이 달린 문제다. 비록 대중들이 '비참한 삶에서 피어난 아름다움'과 같은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그 삶을 살아가는 당사자에게 비참한 삶은, 비참할 뿐이다.
이번에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과연 내 아마추어리즘은 지속가능한가? 지속할 가치는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