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오송금과 횡령죄
안녕하세요. 비트코인, 스팀달러 등 암호화폐를 잘못된 주소로 송금하여 잃어버리는 사건이 종종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 경우 비트코인 등을 잘못 전송받은 사람이 이를 임의로 사용한다면 어떤 죄가 성립할까요? 꽁똔을 얻은 것이니 죄가 되지 않는 것인지..
아직 암호화폐 착오송금에 관한 판례는 없으나, 이와 유사한 '원화' 착오송금에 대해서는 확립된 법리가 있어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사실관계
A씨는 2008년 6월 어느날, 본인의 홍콩상하이(HSBC) 은행 계좌를 보고 두 눈을 의심했습니다. 정체불명의 300만 홍콩달러(한화 약 3억 9,000만 원)가 계좌에 입금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송금인은 처음 보는 P 주식회사.
저 같으면 무서워서 못썼을 것 같은데, 대담한 A씨는 이 돈을 인출하여 임의로 사용했습니다..
그 시각, P 주식회사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직원이 계좌번호를 잘못 입력해서 회사 돈 4억 원을 날리게 생겼으니요.. 하지만 다행히 상대방 계좌번호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단서로 A씨를 찾아냈고, 검찰이 기소하여 A씨는 형사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검찰이 기소한 죄명은 주위적 횡령, 예비적 점유이탈물횡령이었습니다.
횡령죄와 점유이탈물횡령죄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그 반환을 거부한 때 성립하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형법 제355조). 예컨대 회사의 대표이사가 거액의 회사자금을 임의로 사용하는 경우 횡령죄가 성립합니다.
한편, 점유이탈물횡령죄는 유실물, 표류물 또는 타인의 점유를 이탈한 재물을 횡령한 경우 성립하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료에 처합니다(형법 제360조 제1항). 누군가 잃어버린 물건, 예컨대 길을 가다 떨어져있는 오만원짜리 한 장을 슬쩍- 한 경우 이 죄가 성립합니다.
차이점을 말하자면, 횡령죄는 누가 "내 물건(돈)좀 보관해줘" 하면서 맡겨놓았더니 뒷통수를 치면서 이를 임의로 소비하는 경우에, 점유이탈물횡령죄는 "누군가 잃어버린" 물건(돈)을 슬쩍 할 때 성립합니다. 당연히 전자의 불법성이 짙고, 법정형 역시 전자가 훨씬 중합니다(5년 이하의 징역 vs 1년 이하의 징역).
그렇다면, A씨의 경우는 횡령일까요 점유이탈물횡령일까요?
자기 계좌에 잘못 송금된 돈을 쓰는 것을 길가다 떨어진 돈을 줍는 것과 비슷하다고 본다면 점유이탈물횡령에 해당할 것이고, 만약 'P 주식회사가 A씨에게 그 돈을 맡겨놓은 것'이라고 본다면 횡령에 해당할 것입니다.
검찰은 주위적으로 횡령죄, 예비적으로 점유이탈물횡령죄로 기소했습니다. 일단 횡령죄이되, 횡령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점유이탈물횡령에는 해당한다며 이중 방어선을 구축한 것입니다.
피고인의 주장
피고인은 본인과 P주식회사 사이에 거래관계도 없고, 계약관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적극 주장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횡령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내 재물 좀 보관해줘'라는 신임에 기한 위탁관계가 존재해야 하는데, 모르는 사이였으므로 이와 같은 위탁관계를 인정할 수 없고, 따라서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럴듯하죠? 생판 모르는 사람이 돈을 맡겨놨다고 볼 수 있을지..
법원의 판단
제1심, 그리고 제2심법원은 이 같은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여 횡령죄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고, 예비적인 점유이탈물횡령죄만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며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보았습니다.
어떤 예금계좌에 돈이 착오로 잘못 송금되어 입금된 경우에는 그 예금주와 송금인 사이에 신의칙상 보관관계가 성립한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인이 송금 절차의 착오로 인하여 피고인 명의의 은행 계좌에 입금된 돈을 임의로 인출하여 소비한 행위는 횡령죄에 해당하고( 대법원 1968. 7. 24. 선고 1966도1705 판결, 대법원 2005. 10. 28. 선고 2005도5975 판결, 대법원 2006. 10. 12. 선고 2006도3929 판결 등 참조), 이는 송금인과 피고인 사이에 별다른 거래관계가 없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대법원 2010.12.9, 선고, 2010도891, 판결).
대법원은 A씨와 P주식회사 사이에 해당 자금에 대한 보관계약을 체결한 바 없고, 또 별다른 거래관계도 없지만, 송금절차의 착오로 돈이 입금된 이상 "신의칙상" 보관관계가 성립한다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신의칙이란 "신의성실의 원칙"의 줄임말로, 모든 사람이 사회공동생활의 일원으로서 상대방의 신뢰에 반하지 않도록 성의있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법원칙을 말합니다.
결국 계좌에 입금된 3억 9,000만 원을 좋아라 썼던 A씨에게는 횡령죄 유죄가 선고되었습니다.
한 줄 요약
계좌에 잘못 송금된 돈을 임의로 사용하면 횡령죄가 성립합니다.
아직 암호화폐의 착오송금에 관한 판례는 없으나, 최근 법원에서도 비트코인의 재산상 가치를 인정한 것처럼 암호화폐의 재물성을 부정하기 어렵고, 따라서 지갑에 잘못 송금된 비트코인 등을 임의로 사용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횡령죄가 성립하여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한편, 암호화폐의 착오송금과 관련하여, 암호화폐는 실체가 없는 전자적 형태의 파일에 불과하여 이를 '재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어 횡령죄는 성립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고, 경우에 따라 배임죄 성부만 문제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부분 아래 박기태 변호사님()의 댓글 내용 반영하여 정정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댓글을 참조해주세요)
물론 착오송금받은 암호화폐를 임의로 사용하는 것이 범죄가 되더라도 이는 그 지갑 주인을 알 수 있는 경우 의미가 있는 것인데, 현재로선 그 지갑 주인을 찾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다만 스팀잇 아이디로 잘못 송금되었고, 그 아이디 주인이 가입할 때 기입한 정보를 이용하여 신상을 알 수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문제제기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암호화폐 거래가 늘어난다면 이 부분에 대한 해결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은 밤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