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설명 : 뒷 주머니>
통상 결혼한 남자라면 어느 정도의 비상금은 필요하지 않을까?
직장에 나가서 커피를 사먹고, 담배를 사서 피우고, 점심 사먹는 점심값을 일일히 아내에게 확인 당한다면, 결국 딱 그 만큼만 내 용돈이 월급에서 차출된다. 하지만 용돈은 그런 곳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 외에 추가로 용돈이 필요하다고 아내와 협상을 시도할 때 과연 그 때마다 평화롭게 대화가 오갈 수 있을까?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것도 남편의 역할이다. 가정의 평화만을 생각하기에는 당장 사회에서 눈치보면서 대인관계 쌓기에 버거울 수 밖에 없다.
물론 이는 비상금을 챙겨야 하는 이가 도덕적인 올바름이 일정수준 이상 되는 남편들에게 해당됨을 전제로 한다. 남편이 술,도박,여자를 좋아한다면 그 남편은 비상금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탕진과 소비는 구분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로 크지 않은 돈으로 매달 비상금을 빼 놓는 편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이 내 개인적인 이유나 사회적인 활동을 위해 비상금을 사용한 적은 별로 없다. 결론적으로 내 비상금은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이 것을 과연 '비상금'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야 하는가 의문이 들만큼 유리지갑이다.
처음엔 이렇게 모은 돈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잘되서 1년 수익률이 100%가 나와버렸다. 금액이 작기 때문에 큰 돈을 만질 수는 없었지만 이 기쁨을 아내와 공유했고, 이후 새차 구입에 모조리 투입되었다. 차 구매 후 별다른 투자는 없이 중간중간 모아서 아내에게 전달되었다. 깜짝 이벤트로 적은 돈 이지만 나는 주는 맛에 빠져버렸고, 예상치 못한 수입이 아내를 기쁘게 했음은 물론이다. 지금은 그렇게 주어야 할 돈이 스팀파워에 묶여있지만 말이다. 대부분들의 가정이 그렇겠지만 수입이 늘어나면 늘어나는대로 지출이 늘기 마련이다. 아주 큰 폭으로 월급이 상향되지 않는 이상은 저축이 힘들다. 그렇기에 어차피 지출될 월급 일부의 돈을 내가 관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느낀다.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 (쓰긴 하지만 아주 일부다) 결국은 가정으로 돌아가는 돈이고, 내가 주는 시기가 비정기적 이기에 계획적인 소비에는 포함될 수가 없다. 대체적으로 대출 상환에 쓰인다. 아마 내가 따로 비상금이라는 명목으로 모으지 않았다면 대출 상환이 어려웠을 것이다.
집에 데스크탑 컴퓨터가 오래되어 바꾸고 싶어졌다. SSD때문에 7년 이라는 긴 세월을 버텼지 일반 HDD였다면 벌써 재작년에 바꿨을 것이다. 요즘은 게임도 안하기에 일반적인 사용으로써는 모자람이 없다. 다만 음악 프로그램을 돌려야 하기에 이 사양으로는 퀄리티 좋은 플러그인을 사용할 수가 없으니 답답하다. 결국은 아내에게 컴퓨터를 바꾸자고 제안했고 아내는 대뜸 내 돈으로 사란다. 음악장비 사는데 쓰는 돈 모아놓고 있지 않느냐며..물론 그 비상금으로 아주 가끔 음악 장비 구매에 돈을 쓰기도 하지만 비싼건 엄두도 못내고 그나마도 정말 가끔인데..아예 틀린 말도 아니니 심하게 반박할 수도 없고, 그럴려고 모으는 비상금이 아니니 억울하기는 하다. 왜 그런 말을 나에게 했는지 느낌은 왔다. 요즘 비상금을 내놓지 못했으니까. 또한 아내는 알고 있다. 내가 금연을 한 이후로 담배값이 계속 내 주머니에 쌓인다는 것을..그렇다고 가뜩이나 작년에 나와 같이 가상화폐 투기를 욕했던 아내에게 돈주고 스팀 샀다고는 절대 말할 수는 없다. 왜 내 비상금으로 투자를 하는데 아내 눈치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 분명히 내가 돈을 들고 있다고 생각할텐데 그 돈이 밖으로 나오질 않으니 아내는 별의별 생각을 다 할 것 같다. 아 이걸 어쩌나.
결론 :
내가 비상금을 챙기고 있다는 것을 아내는 안다.
하지만 어디다가 썼는지 난 밝힐 수 없다.
스팀 가격이 오르기 전 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