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일 전에 님께서
님께 스팀파워 임대를 받으시는 모습을 우연히 실시간으로 목격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마치 역사의 현장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강렬한 충격을 느꼈다. 와 저게 바로 말로만 듣던 고래의 스파 무상 임대구나! 진짜 저런 일이 일어나는구나! 하고 무척 놀랐다.
나는 뉴비이고 아직 많은 분들과 소통하지 못했기에 스파를 임대받고 활동하는 분들을 몇 분 못 봤다. 그래서 스파 임대라는 게 아주 드문 일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눈앞에서 그것도 내가 자주 방문하던 블로그에서 그 드문 일이 일어났으니 안 놀랄 수가 없다.
물론 무척 기쁘기도 했다. 작가님은 나를 포함한 많은 뉴비들에게 정성 어린 댓글을 남겨주시는 멋진 분이니까. 본인께서도 명성도 54 이하의 뉴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 작가님께서 내 글에 찍어줄 보팅 액수가 늘어날 것에 대한 기대도 조금은(정말로 쪼오금) 있었다.
나는 작가님을 진심으로 축하해드리는 한편, 만약 나에게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떨까 하는 망상을 펼쳐나갔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길 바라서 한 게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버릇이다.
내가 고래에게 스파 무상 임대를 받는 상상을 하는 건, 온 세상이 물로 가득차 고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플라스틱 대야를 타고 바깥으로 헤엄쳐 나가는 상상을 하는 것과 똑같다. 둘 다 절대로 일어날 리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짜잔! 놀랍게도 그 일이 일어났다. 그저께 쓴 믿음이라는 글에 님이 3000스파를 두 달 정도 임대받아 사용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신 거다.
정말 진부한 표현이지만,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했다. 정말로 삼천 스파가 맞나 싶어 손가락을 모니터에 대고 0이 몇 개 붙었는지 세어봤다. 순간 왜 나한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설마 300스파를 쓴다는 걸 0을 하나 더 붙이셨나, 싶었다. 아니면 다른 사람 블로그에 적을 말을 잘못 적으셨나, 싶기도 했다.
나는 반신반의하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그러고 싶다는 댓글을 남겼다. 혹시 모닝님께서 정말로 숫자를 잘못 쓰신 걸까봐 일부러 삼천 스파라고 확실히 언급도 했다(내가 이렇게 용의주도한 사람인 줄은 나도 그저께 처음 알았다)
그리고 어제 자정이 다 된 시간, 정말로 3000스파가 내 빈약한 95스팀파워와 합쳐졌다. 진부한 표현을 딱 한 번만 더 쓴다. 나는 그걸 보고 너무 놀라서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나는 모닝님을 잘 모른다. 다른 분들 글을 읽다가 댓글을 남기신 걸 몇 번 본 적은 있다. 스팀 가즈아를 만드신 분이라는 정도만 안다. 거기에 올라오는 글이 재밌어서 종종 눈팅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모닝님께서 내 글에 보팅과 댓글을 남겨주셨기에 고마운 마음으로 블로그를 방문했다. 나는 내 블로그에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은 거의 대부분 찾아가려고 노력한다. 블로그에 가서 팔로우를 할 겸, 평소 어떤 글을 쓰시나 살펴보고 내가 댓글을 달 수 있는 글엔 댓글을 단다.
그래서 모닝님의 블로그도 열심히 살펴보았으나 7일 이내의 글 중 댓글을 달 수 있는 글이 없었다. 나는 암호화폐에 문외한인 만큼 개발 관련도 모른다(프로그램 관련이라고 써야 할까? 이걸 도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블로그에서 나왔다.
그러고 나서 또 며칠이 지나 모닝님이 내 글에 새로 댓글을 달아주셨다. 이번에는 정말 뭐라도 답례를 해드리겠다는 마음으로 블로그를 찾아갔다. 물론 이번에도 개발 관련 글밖에 없었다. 도저히 어떤 댓글을 달아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죄송한 마음으로 댓글없이 보팅만 누르고 나왔다. 아마 0.02달러쯤 찍혔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모닝님께 드린 건 겨우 0.02달러뿐이다. 반면 모닝님께서 지금까지 내 글에 해주신 보팅이 수십 달러는 될 것이다. 거기다가 이제는 삼천 스파까지 임대해주셨다. 업비트 시세로(이 말을 요즘 들어 유독 많이 쓰는 것 같다. 이런 돈벌레 같으니라고!) 계산하면 천사백만원이 넘는 거금이다.
이 세상에 아무 이유없이 천사백만원이나 되는 거금을 이자도 받지 않고 선뜻 빌려주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그것도 은행은 당연하고 대부업체에서도 돈을 안 빌려주는 신용불량자인 나한테!
나에게 행운이 찾아올 때면 늘 그렇듯, 도저히 이 행운이 믿기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한테 이런 행운이 찾아올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님은 그런 행운이 찾아올 자격이 있는 분이시다. 앞서 쓴 것처럼 많은 뉴비들을 찾아다니며 먼저 소통하시니까. 스팀잇 kr 커뮤니티를 위해 하는 일이 많은 분이시니까.
그러나 나는 최근 들어 게을러져서 kr-join도 안 보게 됐다. 내 블로그에 찾아와주시는 분들 블로그에 가서 댓글을 달기에도 벅찼다(변명이 맞다. 나를 마구 꾸짖어주셔도 된다)
그렇다고 내가 양질의 정보글을 써서 kr커뮤니티에 보탬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쓰는 건 대문 이미지 그대로 일기일 뿐이다. 그것도 몹시 구질구질한 일상을 반쯤 자포자기한 상태로 바닥까지 보여주고 있다.
설마 그게 이유일까? 나의 구질구질한 일상글이 재미있어서?
하긴, 세상엔 참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바닥에 떨어뜨린 과자를 황급히 주워먹으면서 “땅에 떨어져도 3초 안에 주워먹으면 괜찮대”라고 말하는 걸 보고 껄껄 웃는 사람이라면 내 글이 재미있을 수도 있겠다.
음, 갑자기 이해가 가려고 하는데 어쨌든 나는 계속 의문을 품고 여러 이유를 생각해봤다. 나중에는 혹시 내가 여자여서? 하는 생각도 했으나 즉시 관뒀다.
왜냐햐면 나는 블로그에 단 한 번도 내 얼굴 사진을 올린 적 없고, 걸핏하면 내가 살찌고 못생겼다는 글을 썼으며(객관적으로 봐도 진짜 못생겼다. 처음 본 애를 울릴 정도의 위력을 가진 못생김이다) 스팀잇엔 정말 예쁜 여성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쓰다 보니까 오늘의 일기는 솔직하다 못해 내 바닥까지 보여주다 못해 또다시 나의 못생김을 자랑하는 글이 되는 것 같아 슬프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나는 95스팀파워의 크릴새우에서 한순간에 3095스팀파워의 참치가 되었다(님의 스팀파워 계급도 참고) 비록 진짜 내 힘은 아니라 해도 큰 힘이 생긴 것이다.
언젠가 스팀잇에서 그런 글을 읽은 적 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스파이더맨에 나오는 대사인데 그분은 스팀파워에 빗대 그런 표현을 하셨다.
나는 내 3095스팀파워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몇몇 분들이 예상하셨을 것처럼 자는 고양이들을 깨워 춤을 추진 않았다. 뜻밖에 마음이 차분해진 것이다. 나는 넷북 뚜껑을 덮고 어두운 방에 누워서 구멍이 난 천장(몇년 전에 전등갓을 분해하려다가 천장에 구멍을 내고 말았다)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래, 나는 이제 큰 힘이 생겼어.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지. 이 말을 소리내어 중얼거리면서 요즘 유행인 고뇌에 빠진 히어로인 척을 해봤다. 어쩐지 이 스팀파워가 가진 위력을 함부로 써선 안 될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큰 힘엔 큰 책임, 큰 힘엔 큰 책임, 하면서 계속 중얼거렸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큰 책임은 빠져버리고 큰 힘만 자꾸 말하게 됐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엔 큰 책임은 생각도 안 났다. 큰 책임보다 큰 힘이 훨씬 매력적인 단어라서 그런 것 같다.
그래, 나는 이제 큰 힘이 생겼어. 앞으로는 좀 덜 재밌는 글을 써도 내 큰 힘 때문에 다들 재미있다고 댓글을 달아줄 거야. 내가 가진(빌린) 큰 힘 덕분에 말이지.
그럼 나는 우쭐해져서 점점 더 아무 고민없이 글을 막 써대겠지(놀랍게도 나는 그동안 나름대로 엄격한 자체판단을 통과한 글들만 블로그에 올리고 있었다. 내 블로그를 쭉 봐왔던 분들이라면 내가 차마 올리지 못한 글이 얼마나 엉망진창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시리라 믿는다...)
그래도 사람들은 억지로 재밌다고 해줄 거야. 나는 큰 힘을 가졌(빌렸)으니까. 나는 더욱 기고만장해져서 재미가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노잼인 글을 계속해서 올리는 거야. 자기가 호랑이의 권세를 업은 여우라는 사실을 까먹고 말이지. 근데 나를 여우라고 칭하기엔 양심이 찔리니까 두더지라고 하자. 사자성어로는 호가호위가 맞지만.
아무튼 두더지는 사람들의 가짜 호응과 박수에 취해 춤을 춰댄다(갑자기 서커스단의 원숭이 대신이 됐다) 상체 하체가 따로 노는 괴상망측한 춤에도 사람들은 억지로 박수를 쳐준다(뒤에 호랑이가 있기 때문에)
하지만 약속된 두 달이 지나 호랑이가 권세를 거두어가면, 그래서 두더지의 뒤에 호랑이가 없게 되면 이젠 아무도 박수를 쳐주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다들 집으로 돌아가버린다. 혼자 남은 두더지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다시 사람들을 불러오고자 혼신의 힘을 다해 필생의 역작 같은 춤을 춘다. 놀랍게도 제법 볼만한 춤이다!
그러나 이미 억지로 박수를 치느라 지친 사람들은 단 한 명도 두더지를 보러 오지 않는다. 두더지는 외톨이가 된다. 망한 놀이공원 한구석의 서커스 천막 안에서 혼자만의 춤을 추다가 끝내는 지쳐 털썩 쓰러진다. 모든 힘이 다한 것이다. 두더지는 두 번 다신 일어나 춤을 추지 못한다...
헉 갑자기 두더지를 왜 죽였을까. 의식의 흐름대로 쓰면 이게 문제다. 아무튼 나는 두 달 뒤 축제가 끝나면 사람들이 떠나고 홀로 남게 될 게 두렵기 때문에 글은 쓰던 대로 열심히 길게 쓰기로 결심했다(오늘처럼 길게 쓰진 않을 것이다ㅜㅜ)
이제 문제는 어떤 글에 보팅을 할 것인가다. 여기까지 사천칠백자나 썼고 나는 빨리 이 글을 블로그에 올리고 싶기 때문에 여기서부터는 짧게 쓴다. 역시나 지금껏 보팅을 해왔던 대로 할 것이다.
나는 일기쓰는 걸 좋아하는 만큼이나 남의 일기 읽는 걸 좋아한다. 나는 장르 소설을 무척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공포 소설의 제왕 스티븐 킹, 추리 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를 사랑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두 작가의 책들 중 최고로 좋아하고 수십 번씩 반복해서 읽는 건 유혹하는 글쓰기와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이다. 스티븐 킹의 책, 유혹하는 글쓰기는 작법서이지만 실은 자서전이나 다름없다. 즉 나는 장르 소설 대가들의 자서전을 좋아하는 것이다. 자서전이 일기랑은 다른 면이 있겠지만, 넓게 보면 그것 또한 일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도 ‘나’를 주인공으로 일기를 쓰고 다른 사람들도 ‘나’를 주인공으로 일기를 쓴다. 똑같이 ‘나’인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너무나도 다른, 수많은 삶을 사는 ‘나’가 있다는 사실이 무척 재미있다. 다른 사람의 일기를 통해 잠시나마 나도 그 사람이 되어 그 삶을 살아보는 게 정말 즐겁다.
나는 여태껏 그래왔던 대로, 나에게 그런 즐거움을 주는 분들에게 보팅을 할 것이다. 물론 절반은 이미 내가 팔로우한 분들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와 자주 교류하는 분들 대다수가 명성도 54 이하인 뉴비이고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분들이니 괜찮지 않을까 싶다. 만약 괜찮지 않다면 모닝님께서 언제든 지적해주시고 임대해주신 스파를 회수해가셨으면 좋겠다.
딱 하나 내가 굳게 약속할 수 있는 건, 절대로 셀프보팅은 하지 않겠다는 점이다. 나는 셀프보팅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본인이 보기에 만족스러운 글은 셀프보팅을 하는 게 좋다는 생각도 한다. 내가 셀프보팅을 하지 않으려는 건 그저 빌린 스파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글이 또 너무 길어져버렸다. 마지막으로 삼천 스파를 임대해주신 모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