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친구와 같이 살던 어느 겨울날에 겪은 일이다.
평일이라 친구는 회사에 갔고 나는 언제나처럼 느지막이 일어났다. 아침겸 점심으로 라면을 먹고 냉장고를 열었더니 물병에 보리차가 채 한 컵도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리는 평소에 생수 대신 보리차를 마셨는데, 이 보리차를 끓이는 건 나의 일이었다. 사실 일이라고 부르기 멋쩍을 만큼 보리차를 끓이는 건 간단하다. 큼지막한 주전자로 수돗물을 펄펄 끓인 다음 대형 보리차 티백을 넣고 식힌 뒤 물병 세 개에 나눠 담아 냉장고에 넣으면 된다.
친구도 나도 물을 많이 마시는 터라 3,4일에 한 번은 보리차를 끓여야 했는데 깜빡한 것이다. 나는 평소처럼 주전자 가득 물을 끓인 다음 불을 끄고 보리차 티백을 넣으려 했다. 그런데 아뿔싸, 티백 상자가 텅 비었다. 급한대로 조그만 녹차 티백이라도 몇 개 넣어 우리려고 했는데 녹차마저 없었다.
친구는 저녁 때에나 오는데 그때까지 마실 물이 없으니 큰일이었다. 끓인 수돗물을 그냥 마시려니 물맛이 영 미묘한 게 잘 넘어가지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마트에 가서 보리차 티백을 사오기로 결심했다. 이게 왜 결심씩이나 해야 할 일이었나면 바깥은 엄청 추웠고, 그저께 눈이 펑펑 쏟아졌으며, 나는 빙판공포증이 있기 때문이다.
빙판공포증은 내가 마음대로 붙인 이름이다. 이게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나는 기억하는 것보다 기억하지 못하는 게 훨씬 많다) 아마 과거 빙판길에서 호되게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찍은 뒤에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이 빙판공포증에 걸리면 겨울에 밖을 나다니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빙판길은 물론이고 멀쩡한 길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한 발 내딛기도 무서워진다. 주위에 난간이나 가로수, 전봇대처럼 뭐라도 붙잡을 게 없나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게다가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동네 끄트머리, 산 바로 아래인 높은 지대에 있다. 마트에 가든 버스를 타러 가든 필연적으로 내리막길을 내려가야 한다. 눈이 갓 쌓였을 때는 차라리 낫다. 하지만 눈이 내린 지 이삼일 지나 한낮에 반쯤 녹았다가 밤에 꽝꽝 언 뒤라면 최악이다. 아이스링크장 저리가라 하는 거대한 빙판이 쫙 깔리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멀쩡한 사람도 난간을 붙잡고 살금살금 걸어내려간다. 하물며 빙판공포증이 있는 나는 난간에 목숨이 달리기라도 한 양 껴안다시피해서 걸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난간이 마트 가는 길까지 쭉 이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아파트 진입로나 도로 때문에 보도블럭이 깔리지 않은 곳엔 난간이 없다.
그럼 나는 마치 절벽에 선 사람처럼 난간 끄트머리를 잡고 우뚝 멈춰 선다. 다음 난간이 있는 곳까지의 거리를 눈으로 가늠하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뒤에야 발을 뗄 수 있다. 언제 넘어져도 곧장 바닥을 짚을 수 있도록 두 손을 주머니에서 빼고 팔을 반쯤 든 자세로 말이다(유도의 전방 낙법 자세랑 비슷한 것 같다) 아마 남들에겐 엄청 웃긴 꼴로 보이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그날도 나는 아파트 진입로에서부터 팔을 엉거주춤하게 들고 발로 바닥을 신중하게 문지르고 있었다. 발을 디딜 곳을 먼저 발끝으로 살짝 문질러본 다음 미끄럽지 않으면 그제야 한 걸음을 떼는 것이다.
그때는 친구가 결혼해서 이 집을 떠나며 자기 외투를 나에게 물려주기 전이었다. 그래서 내 복장은 털실 소재의 가디건 차림이었다. 늦가을이면 모를까, 끔찍하게 매서운 한겨울 추위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나름대로 방어를 한다고 목도리를 목에서부터 입 근처까지 칭칭 둘렀지만, 그래도 춥긴 매한가지였다.
가뜩이나 빙판공포증으로 다리가 후들대는데 춥기까지 하니 몸이 사정없이 떨렸다. 빨리 마트에 가서 보리차 사고 와야겠다는 생각과 달리 통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이런 걸음으로는 평소 10분이면 도착할 마트까지 20분은 걸릴 것 같았다.
나는 용기를 내서 발 디딜 곳을 미리 문질러보지 않고 그냥 디뎠다. 약간 미끄럽긴 했으나 넘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다음 걸음도 과감하게 그냥 디뎌봤다. 이번에도 성공이었다. 연이은 성공에 자신감이 과하게 올라갔다. 나는 겁도 없이 난간을 한 손으로만 잡고 얼어붙어 반짝대는 내리막길을 성큼성큼 걸어내려갔다.
원래 사고는 이렇게 방심했을 때 벌어진다. 아니나 다를까, 횡단보도까지 다 와가는 찰나 주르륵 미끄러지고 말았다. 순간 시야에 하늘이 보이면서 정신이 아찔했다. 하필이면 그곳엔 난간이 없어 팔을 휘저어도 잡히는 게 없었다. 이대로 넘어지면 어디 한 곳은 제대로 부러지겠구나 싶었다.
다행히 자빠지기 전에 뒤에서 누가 나를 붙잡았다(엄마야, 아가씨! 하고 깜짝 놀란 목소리로) 나는 겨우 중심을 잡고 서서 감사하다고 중얼거린 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내 생명을 구해준 은인께 얼굴을 보고 제대로 인사하려고 뒤뚱뒤뚱 돌아섰다.
내 생명의 은인께서는 그때까지도 내 팔을 붙잡고 있다가 놓아주었는데, 사십대 후반이나 오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나와 달리 목깃에 털이 두툼한 코트로 중무장한 상태였고, 팔에 약간 큰 핸드백을 걸고 있었다. 핸드백 지퍼가 훤히 열려 있어서 안에 똑같은 전단지가 몇 장 든 게 보였다.
“괜찮아요?”
아주머니가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대답한 뒤 고개를 숙이면서 다시금 감사하다고 말했다. 아주머니는 그래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얼굴을 보더니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망설이는 태도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기 사람 아니죠?”
앗, 어떻게 알았지!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다른 지역 출신으로 어쩌다 보니 연고없는 이 동네에 흘러들어와 살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 사투리 때문에 아신 건가? 괜찮아요와 감사합니다밖에 말하지 않았는데 알 정도라니 내 사투리가 심하긴 한가 보다. 나는 약간 부끄러운 마음으로 맞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마치 내 속마음을 들여다본 양,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은 미소를 지었다.
“여긴 많이 춥죠?”
아주머니는 부쩍 친근하게 말을 걸며 내 옆에 섰다. 아마도 나처럼 횡단보도 맞은편의 마트나 버스정거장으로 가려는 듯했다.
나는 네, 그러게요, 많이 춥네요, 하고 대답하면서 별생각없이 고개를 조금 숙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주머니의 핸드백 속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이제보니 똑같은 전단지들은 모두 근처 교회 거였다. 내 목숨을 살려준 은인께는 죄송스러운 생각이지만, 순간 곤란하다 싶었다.
나는 거절을 잘 못한다. 번화가를 5분만 걸어도 양손에 온갖 전단지와 휴지, 물티슈를 들게 된다. 심지어 친구와 같이 걸을 때에도 그렇다. 전단지 나눠주는 알바들은 이상하게도 친구는 피하고 나한테만 전단지를 준다. 내 얼굴에 ‘절대로 거절 못하는 사람’이라고 써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다 보니 봉고차에서 파는 미심쩍은 화장품을 억지로 구경한 적도 있고(다행히 사지는 않았다) 사이비 종교 전도하는 사람한테 잡혀서 1시간 동안 설교를 들은 적도 있으며(같이 제사드리러 가자는 걸 겨우 뿌리치고 도망쳤다) 시작은 분명히 설문조사래서 응했는데 중간부터는 또 그놈의 사이비 종교라 식은땀을 흘린 적도 있었다(화장실이 급했는데 끝까지 안 놔주려고 했다)
만약 아주머니가 교회 전단지를 준다면 기쁜 마음으로 받을 자신은 있었다. 우선 그 교회는 사이비가 아니었고, 나는 무교고 굳이 종교를 가진다면 불교에 관심이 있지만 기독교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무엇보다 내 생명을 구해주신 분이니까.
그러나 아주머니가 나를 붙잡고 본격적으로 전도를 한다면 그건 기쁜 마음으로 들을 자신이 없었다. 날이 조금만 덜 추웠더라면 10분 정도는 내어드릴 수 있지만 인간적으로 너무 추웠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서 고양이들과 뒹굴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언제 초록불로 바뀌나 하고 초조하게 다리를 떨며 신호등만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혼잣말로 아유, 좀 따뜻하게 입고 나오지, 춥겠네, 하고 중얼거렸다.
뭐라 대꾸하기도 그렇고 가만히 있기도 그래서 어색한 미소를 짓는데 마침 신호등 불이 바뀌었다. 나는 아주머니와 같이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옆을 힐끔거렸다. 아주머니가 버스 정류장에 서거나 마트 반대편으로 갈 것 같으면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를 하고 헤어지려고 했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버스 정류장에 서지도, 마트 반대편으로 가지도 않았다. 또다시 자연스럽게 우리는 나란히 발을 맞춰 걷게 됐다. 약간 당황스럽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했다. 어쩐지 나도 아주머니께 뭔가 말을 걸어야 할 것 같았다. 왜냐햐면 계속 아주머니가 먼저 말을 걸어주셨으니까 이젠 내 차례 같았기 때문이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어디 가시냐고 물어볼까, 아니 그건 너무 개인적인 질문 같은데, 하고 마음속으로 우물쭈물대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다시 미소를 지으면서(정말로 사람 좋아 보이는 상냥한 미소였다) 물었다.
“마트 가요?”
나는 얼른 네, 하고 대답한 다음에 뭐 살 게 있어서요, 하고 말을 덧붙였다(대답을 너무 짧게 한 것 같아서 마음에 걸렸다) 아주머니는 잘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더니 뜬금없이 좀 이상한 말을 했다.
“한국이 원래 그래요. 따뜻해졌다 싶다가도 다시 추워지거든. 옷을 잘 챙겨입고 다녀야 돼요.”
나는 아주머니의 말이 바로 이해되지 않았다. 어려운 말이라서가 아니라 한국이 원래 그렇다는 말을 왜 굳이 붙이신 건지 의아해서였다. 그래서 얼떨떨한 표정으로 아주머니를 쳐다봤다. 아주머니는 더욱 밝은 미소를 짓더니 입을 크게 벌리고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설명했다.
“삼. 한. 사. 온. 우리나라는(라고 말했다가 아차, 싶은 얼굴로 한국은, 하고 말을 바꾸셨다) 겨울이 삼한사온이 특징이에요. 추웠다가 따뜻해졌다가, 또 추웠다가 하는 거거든요. 3월까지도 그래요. 잠깐 따뜻하다고 옷을 얆게 입으면 감기 걸려요, 감. 기.”
아... 하고 나는 마치 모르던 걸 안 척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으로는 너무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었다. 이제 보니 아주머니는 나를 다른 지역에서 온 게 아니라 무슨 저 먼 다른 나라에서 온 걸로 오해하고 있었다.
대체 어쩌다 그런 오해가 생긴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살다 살다 외국인으로 오해받은 적은 처음이었다. 학창시절 학교 애들한테 장난으로 중국사람이라는 놀림을 받은 적은 있어도, 아주머니처럼 정말로 나를 외국인이라 믿고 대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 내 피부가 까매서 그런가? 내가 그냥 못생긴 게 아니라 이국적으로 못생겼나? 나는 집으로 돌아가면 거울로 얼굴을 자세히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이제 어떡해야 하나 싶었다.
예전에 컬투라디오였나 유머싸이트였나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지하철에서 할아버지들에게 외국인 노동자로 오해받은 여자의 사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여자는 오해를 풀기 애매한 상황이라 그냥 계속 외국인 노동자인 척했던 것 같다.
만약 아주머니가 나한테 어디서 왔냐고 물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사실대로 한국 사람이라고 밝히면 아주머니가 무안해하실 것 같은데, 그건 미안해서 싫다. 나를 도와준 분에게, 또 뭔가 더 도와주고 싶어하는 분에게 그런 마음을 선사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외국인인 척하기엔 외국을 너무 모른다. 게다가 그런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내 마음이 너무 슬퍼질 것 같았다...
그야말로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상황에서 발이 점점 빨라졌다. 아주머니가 내 출신국을 궁금해하기 전에 빨리 헤어지고 각자 갈 길을 가는 게 최선 같았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마트 진입로에서 또 자연스럽게 내 옆으로 왔다. 아주머니도 마트에 볼 일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다시 고민을 시작했다. 사실을 밝힐지 아니면 거짓말을 할지, 거짓말을 한다면 대체 어떤 나라를 말해야 하는지 등등.
그때 갑자기 아주머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아주머니는 휴대폰을 꺼내 귀에 대면서 나한테 눈짓을 보냈다. 잘 가라는 건지 잠시 기다리라는 건지 의미를 알 수 없는 눈짓이었지만, 나는 나 좋은 쪽으로 해석하기로 했다. 그래서 말없이 아주머니께 고개를 꾸벅 숙인 뒤 허둥지둥 마트로 먼저 들어갔다. 혹시라도 아주머니가 뒤따라올까봐 곧장 화장실로 대피했다.
화장실에서 한 5분쯤 있다가 나왔더니 다행히 아주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또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보리차 하나만 달랑 사고 후다닥 마트에서 나왔다(원래는 마트에 가면 살 게 없어도 괜히 두세바퀴 돌면서 뭘 더 사오곤 했다)
그러고도 마음을 놓지 않고 내딴에는 전속력으로- 컵떡볶이를 먹으면서 걷는 초등학생보다 느린 속도로 빙판길을 올라서 집에 도착했다. 식은 주전자를 다시 끓이는 동안 화장실에 들어가서 거울을 보는데 아무리 봐도 내 눈에는 내가 그냥 평범한(그리고 못생긴) 한국 사람 같이 보여서 기분이 여러모로 이상했다.
그뒤로 아주머니와는 한번도 마주친 적 없다. 언젠가 먼 발치에서 그때의 아주머니와 비슷한 사람을 본 것 같기도 한데 확실치는 않다. 아무튼 다시 생각해봐도 그 아주머니는 참 좋은 분이셨다. 비록 나를 외국인이라 생각해서 그런 거긴 하지만, 나한테 무척 친절하게 대해 주셨으니까. 그렇지만 결코 다시 뵙고 싶지는 않다ㅜㅜ
아주머니께서 어디서 지내시든 이 추운 겨울, 삼한사온을 잘 보내시길 바라며 일기인지 추억담인지 자학담인지 모를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