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UFC에서 활동하는 정찬성 선수가 MBC TV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것을 보았다. 그가 시합을 앞두고 보통 얼마나 긴장하는지 그 정도나 깊이에 대해 글쓴이가 세세히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공익근무요원을 마치고 성사된 첫 대전을 앞에 두고 머릿속이 복잡했고 긴장을 많이 했다는 그의 술회는 복귀전의 부담감을 어렴풋이 보여주었다. 뒤엉킨 심정으로 옥타곤에 오른 그는 어떠한 형상을 마주하고서 고조된 긴장이 일순 풀렸다고 했는데, 그 청심환적 형상의 정체는 다름아닌 눈빛 교환 과정에서 시야에 들어온 상대 선수의 몇 가닥의 가슴털이었다는 것이다. 이 일화를 듣고 있자니 언젠가 읽은 알랭 드 보통의 저서가 떠올랐다.
이사벨은 머리 위에서 비추는 프로젝터를 이용하여 회사의 전략을 설명하는 일을 맡기로 했다. 그녀는 악명이 높을 정도로 숫자에 자신이 없었지만, 프로젝터를 이용하여 관련 대차대조표를 설명해야 했다. 그녀는 그 일이 두려웠다. 그러나 이야기를 할 차례가 다가오기 직전, 뚱뚱한 은행 관리자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가 화장실에서 돌아올 때까지 회의는 중단되었다. 그러나 돌아와서 10분이 안 지나 어젯밤에 먹은 조개가 안 좋았다면서 다시 자리를 비웠다. 이사벨은 그의 곤경 때문에 프리젠테이션에 대한 집중력이 흐트러지기는커녕, 오히려 묘한 자심감을 얻었다. 갑자기 은행 관리자가 약점 많은 인간, 예민한 위와 창자가 있는 인간으로 바뀐 것이다. 그의 가는 세로 줄무늬 양복도 전처럼 그녀의 기를 죽이지 않았다. 회사 화장실 칸의 타일을 바른 감방 같은 곳에서 발목까지 바지를 내리는 바람에 줄무늬가 혼란스러운 물결무늬로 흩어지고, 내장이 비틀리는 바람에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너를 사랑한다는 건』(정영목 옮김, 은행나무, 2011)
과도한 긴장 탓에 생활에 애로를 느낄 정도는 아니었으나 돌아보건대 글쓴이는 소위 무대체질이 아니었다. 일선에 나서야 할 상황을 마뜩잖아 했으며 대중의 눈빛이 화사한 조명으로 여겨진 일도 별로 없다. 인간의 사회성을 극도로 제고해야 할 적마다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곤 했다. '못하면 어떤가.' '좀 바보로 보이면 어떤가.' '굳이 긴장할 필요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