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장애는 특정 사람만 향유하는 전유물일까?
예전에 SBS 뉴스에 나온 아무개가 “장애인이 무슨 자랑이에요?”라는 말을 해서 화제였다. 장애가 멸시를 받는 까닭은 부재이며, 부재로 인해 상실하는 능력, 무능 때문이다. 예컨대 하반신 장애인은 다리를 쓰는 그 어떤 무엇도 하기 힘들며, 그것은 그만큼 능력이 제한된다는 이야기다. 기계적으로, 철 같은 시선으로 본다면 범용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애는 특정 사람만이 향유한다는 착각 속에 빠져있으면 위 같은 위험한 생각도 충분히 가능하다. 문제는 장애는 특정 사람의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물리학을 공부하지 않은 세계적인 축구선수를, 물리학자는 장애가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고, 가능한 것을 축구선수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축구를 못하는 물리학자가 있다면 축구선수는 그를 장애가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물론 진짜 장애와 ‘상대적 장애’는 차이가 있다. 상대적 장애는 노력이나 연습을 통해 그 능력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반면, 완전한 장애는 애초에 그런 시도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능력이 세상의 모든 지식과 예술, 육체적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고 했을 때 결국 상대적 장애는 영원히 잔존하게 된다. 오직 이것에 대해 왈가왈부하기 힘든 존재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신’ 그 자체뿐이다.
장애를 힐난하거나, 약자를 힐난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 것과 같다. 언젠가 나의 능력이 부재하는 날이 올 수 있고, 그때 자신이 최종적으로 장애로 판단되어 도태된다면 거기에 어떤 변명을 댈 수 있을 것인가. 교수가 일평생을 공부하며 가장 두려운 것은 자신이 ‘알지 못할까’봐 두려운 것이다. 어떤 분야의 최고의 정점에 있어도 인간 시야의 사각지대는 존재할 수밖에 없고, 그 모든 것을 장애라 치부하여 도태한다면 결국 모든 인간은 파멸할 수밖에 없다.
일전에 상식이 상대적이라고 했던 것처럼 장애나 약자의 위치라는 것 또한 상대적인 것이다. 인간은 모두 약한 곳을 지니고 있으며, 타인보다 강한 점 또한 분명히 가지고 있다. 고로 약한 곳을 집요하게 공격하여 자신의 약점을 더 크게 만드는 일 보다는, 서로의 강점으로 약점을 보완해주며 완전한 하나로 만드는 것이 인간 사회가 지향해야할 길이자, 모든 개인의 보험인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신이며, 모든 것을 알았으며, 모든 육체적인 제한으로부터 벗어났다면 마땅히 모든 사람을 장애라 일컬으며 비난해도 무방할 것이지만, 신조차도 결코 그런 선택을 하진 않을 것이다. 네가 완벽할 리도 없거니와, 완벽에 이르지 않았다면 부디 함부로 말하지 말라. 우리는 언제고 누군가에게 장애를 가진 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