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낙오는 죄였다. 등수가 떨어지고 실력이 떨어진다는 건 죄였다.
잘한다는 건 착하다는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못한다는 것은 넌 못됐다와 동일한 것이었다. 공부나 운동, 그림도 마찬가지였다. 어렸을 때 부터 착하다는 것에 점수를 매긴 적이 없었으니까, 선생님도 부모님도 착하다는 걸 평가할 숫자를 찾지 못했으니까.
한 스케이트 선수가 인터뷰를 했고 난 잘했는데 쟤가 뒤쳐져서 라고 동료를 탓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사람들의 비난이 빗발쳤고 제명 운동 청원까지 등장했다. 궁금해서 영상을 찾아 봤다.
파란 수트를 입은 세 사람이 빙상 위를 미끄러지고 있었다. 팀이었다. 두 사람은 빠르게 앞섰고, 한 사람은 뒤쳐져 마지막에 골인했다. 맨 마지막에 들어온 사람의 기록으로 팀의 등수가 기록되므로 누가 봐도 마지막에 들어온 사람의 책임은 컸다.
나는 만약, 이 경기가 88올림픽 때였다면 누가 비난받았을까 잠깐 생각해 봤다.
그리고 정말 격세지감을 느꼈다.
월드컵 때 아까운 골을 허용해 비난 받던 골키퍼를 떠올렸다. 자살골을 기록한 선수, 성적을 내지 못한 감독이 악플과 비난에 시달리던 문화는 그리 오래 된 게 아니다. ‘너 때문에 우리가 졌다.’ 월드컵 때 마다 어느 나라의 팀이건 축구 경기에서 누군가 자살골을 넣어 아깝게 팀이 패배하면 그는 역사 속에서 사라져야만 했다. 그 사람이 연습을 얼마나 했던, 피나는 노력을 했건 알 바 아니었다. 심지어 연아도 메달권에서 탈락하기만 하면 예외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뭔가 바뀌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작은 혁명이 일어났다.
언제부터였을까, 낙오가 아니라 이기심에 분노한 것이.
점수가 아니라 인성에 손가락질을 하게 된 것이.
모두가 TV에서 하는 이야기만 철썩같이 믿던 한 시절이 있었다. 누굴 비난해야 하는지 무얼 비난해야 하는지 뭐가 옳은 건지 방송이 가르쳐주는 걸 곧이곧대로 따라가던 시절이 있었다. 진실이 그들이 만들어주는 프레임에 불과했다는 걸, 트위터를 하면서 알았다. 트위터에서 뉴스라는 벌거벗은 임금님이 허우적대는걸 지켜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프레임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뒤쳐진 이에 분노하지 않고 동료를 배신한 이에게 분노할 줄 어떤 뉴스가 예측할 수 있었을까. 이것은 뉴스가 만든 프레임이 아니다. 어쨌든 뉴스의 관심은 메달이니까, 우리 선수들이 선전했냐, 안했냐니까. 당연히 마지막에 들어온 이에게 패배의 책임이 돌아갔었을 법한 이야기는 평범한 사람들이 반기를 들면서 뒤집어진다.
물론, 단순히 그녀의 인터뷰 당시 ‘썩소’ 가 재수없어서, 였을 수도 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놀랍고 흥미로웠다. 늦게 골인한 건 죄가 아니지만, 동료를 탓하는 건 죄야. 팀워크를 배신한 점수는 더 싫어.
메달 못 딴 것에 화 낼 정도로 우린 이제 유치하지 않아.
우연찮게 기회가 되어 학부모와 선생님들을 종종 만난다. 4차 산업혁명 대란(?) 이후로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 중요하다, 협력을 가르치시오 라는 이야기는 선생님들이 무더기로 연수를 듣는 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필수 역량 가운데 공감능력, 협업능력이 계산능력, 암기능력 따위를 제치고 유행처럼 급부상한 지 꽤 되었다. 사실 선생님들도 다 안다. 지금 시대가 시험 점수 같은 걸 강요할 때가 아니라는 걸. 다만 공감능력 같은 걸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지’ 몰라서, 공감과 협업을 아직 교과서와 시험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실은 선생님들도 방법을 다 아는 데 아직 학교라는 공간이나 제도 자체가 제약이 많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오늘날 더 이상 시험 점수가 높다는 건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과 동의어가 아니라는 걸, 누구나 다 안다는 거다. 실력이 있다는 게 그 사람이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뭔가를 아주 잘한다는 게 그 사람이 함께 하기 좋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며 뭔가를 잘 못 한다는 것도 죄가 아니라는 것도. 실력있고 잘나 봤자 부당하게 나랏돈 처 먹는 걸 지겹게 봤고, 겁나 똑똑해봤자 자기만 살라고 얄밉게 구는 사람들 지겹게 볼 만큼 봤다. 능력있는 게 알고보니 혼자 잘 사는 데만 능력 있더라, 사시를 스트레이트로 패스한 사람을 인재라고 대우해 줬지만 존경받을 가치도 없더라. 이기적이어도 좋으니 일등만 되면 괜찮다는 그런 강요엔, 이젠 더 이상 속기 싫다는 아우성. 어쩌면 한 어린 선수가 받기엔 과도한 비난엔 사람들이 근 몇 년 간 느꼈던 그 분노가 투영된 건 아닐까.
아마 어제의 논란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어린 아이들이 있다면 그들도 기억할 것이다. 세 사람이 함께하는 팀에서 한 사람이 뒤쳐저서 기록이 떨어졌다고, 그런데 그 한 동료를 두고 먼저 간 두 사람이 비판받았다고. 너희들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함께 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