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기숙사 생활을 하는 딸이 왔길래, 한달 전 친정에서 갖고 온 밤을 한바가지 삶았다. 자식이 뭐길래 큰밤, 작은밤 섞여 있는 것들중 그중 큰밤만을 골라 삶았다. 친정집 근처의 밤나무들은 주로 재래종이어서 밤이 대체로 작다.
과도칼과 함께 밤바가지를 갖다 놓으며, 밤을 까 먹으라고 하니 남편은 밤을 한두개 이로 깨물어서 입으로 속만 빼먹고, 딸래미는 제 아빠처럼 이로 깨물어서 찻숟가락으로 속을 긁어 먹다가 죽어있는 밤 벌레를 보고는 기겁을 하였다.
나는 삶은 밤을 먹을 때는 항상 과도로 까서 먹는다. 이로 깨물어 먹다가 삶아서 죽어 있는 밤 벌레를 발견하는 참사를 막기 위함이 첫째 이유이고, 밤 겉껍질을 벗기고 속껍질을 벗겨 온전한 밤형태를 유지한 채로 한 입에 쏙옥 넣어 꿀맛의 밤맛을 느끼기 위함이 두번째 이유이다. 그러나 과도로 밤을 까 먹는 일은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한다. 딱딱한 겉껍질을 벗기는 것이 만만치 않으며, 속에 벌레나 상한 부분이 있으면 그 곳을 도려내고 속 껍질을 벗기다 보면 시간이 번쩍번쩍 간다.
벌레를 본 딸이 과도를 들고 밤을 까보려 시도 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참 가관이었다. 밤 겉껍질은 단단하고 맨들맨들하여 칼집이 잘 나지 않으며 자칫 잘못하면 손을 베일 수 있다. 그리하여 밤의 머리부분(?) , 윤기나지 않고 거칠은 부분에 처음 칼집을 넣어야만 밤껍질을 벗길 수 있다. 그간 엄마가 예쁘게 까 주는 밤만 먹은 딸은 칼로 반들반들한 곳에 칼집을 시도하지만 밤엔 흠집하나 나지 않았다. 내가 훈수를 두려 하니 약속이 있다며 외출준비를 시작했다.
결국 삶은 밤은 내 일거리가 되었다. TV 앞에 앉아 밤을 하나하나 까기 시작했다. 껍질은 수북이 쌓이는데 정작 깐 밤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한자세로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니 여기 저기 뻐근하지만 외출에서 돌아온 딸이 맛있게 먹을 것을 생각하니 참을 만 했다. 남편은 딸애가 알아서 먹도록 냅두지 않고 일을 사서 한다고 핀잔을 주었다.
밤을 밤 깊도록 까고 나서, 밤 늦게까지 친구들과 놀다 들어 온 딸에게 밤을 먹으라고 하니 밤 늦게 밤을 먹으면 밤맛을 알 수 없으니 내일 밤을 먹겠다며 밤 먹기를 거부했다. 밤까지 밤까며 저만 생각한 엄마맘도 몰라주는 딸래미 같으니라구.
Sponsored ( Powered by dclick )
Raven의 秀討利(Story) 78 : 소금과 미세플라스틱, 안전한 건 없다.
Raven의 秀討利(Story) 78 : 소금과 미세플라스틱, 안전한 건 없다. 플라스틱이 우...